[전남인터넷신문]인류의 역사와 술과 식초는 오랫동안 함께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이 식재료를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과일이나 곡물에 곰팡이가 자라고 효모가 작용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테니까.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후 플로리와 체인 등의 연구를 거쳐 인류를 구한 약으로 발전한 역사를 생각해 본다. 인간이 곰팡이의 존재와 쓰임을 알기 훨씬 전부터 곰팡이는 자연계의 분해와 순환을 담당하며 대자연의 질서 속에서 제 몫을 해왔다.
소중하게 보관해 둔 식재료가 어느 날 술이 되고, 그것을 처음 맛본 인류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을까. 시큼하고 쌉싸름하면서도 단맛이 입안을 채우고 목줄기를 타고 넘어갈 때 느껴지는 짜릿함. 잠시 후 보이지 않던 세상이 갑자기 후욱 들어오고 몸이 들썩거리는 기분 좋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인류는 술을 찾고, 더 맛있고 안정적으로 술을 빚는 방법을 끊임없이 궁구했을 것이다.
내가 마시고 싶은 술이 코에서 입으로, 다시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느낌을 그려 본다. 그 술을 빚기 위해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누룩이다. 그러하니 누룩은 집안마다, 지방마다, 민족마다 다른 술맛을 만들어내는 술빚기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누룩은 대체로 곡물을 분쇄해 물을 섞고 단단히 성형한 뒤 자연적으로 띄우는 병곡(餠麯), 즉 떡누룩 계열이 중심이었다. 누룩을 만드는 방법이 달라지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의 구성과 당화력·발효력·산 생성 등이 달라지고, 결국 술의 제조 과정과 맛과 향도 달라진다. 누룩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우리 술맛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15세기 『산가요록』, 16세기 『수운잡방』, 17세기 『음식디미방』, 18세기 『증보산림경제』, 19세기 『임원경제지』 등 옛 조리서와 농서에는 다양한 누룩 제조법이 등장한다. 밀을 중심으로 한 누룩뿐 아니라 쌀·녹두·보리 등 여러 곡물을 이용한 특수 누룩과 특정 술을 빚는 데 이용한 누룩도 확인된다.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다르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도 달라지고, 그렇게 서로 다른 술맛이 만들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남도 지방의 누룩은 남도 사람들의 바쁘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 그러면서도 손이 큰 기질만큼이나 투박하고 힘찼다. 통밀을 거칠거칠하게 빻아 나무로 만든 되나 그릇에 넣고, 힘 좋은 남정네나 아이를 업은 여인들이 버선발 뒤꿈치로 꾹꾹 디뎌 만들었다. 따뜻한 곳에 짚을 깔거나 덮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누룩을 띄웠던 옛사람들의 경험지식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나는 직접 누룩을 성형하면서 습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도에서 쾌적하고 알맞은 상태를 나타낼 때 쓰는 ‘고실고실하다’라는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질지도, 너무 마르지도 않은 고실고실한 상태에서 누룩을 단단하게 디뎌야 한다. 그렇다고 숨 쉴 틈조차 없을 만큼 단단해서도 안 된다. 미세한 틈으로 공기가 드나들고 그 틈을 찾아 곰팡이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피어나는 곰팡이를 보면서 세상만물에도 저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틈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금년 따가운 여름에는 내 고향 강진 금당리와 인연이 깊은 백련꽃으로 술을 빚기 위해 연화곡을 만들었다. 서유구 선생의 『정조지』를 참고하여 담양대나무축제에서 인도네시아 앙클룽 문화를 선보였던 인간문화재 분들과 함께 빚었다. 7월과 8월은 연꽃의 계절이다. 연꽃은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도 깊은 인연이 있으니 연꽃을 앞에 두고 풍류를 즐기며 누룩을 빚었다.
인도네시아에도 곡자가 있고 곡물주가 있다. 하지만 살아가는 곳이 다르고 기후와 미생물 환경이 다르니 누룩도 술맛도 다르다. 그들이 빚은 술과 우리가 빚은 술을 함께 맛보는 것 자체가 서로의 자연과 문화를 만나는 일이었다. 술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귀빈 한 분은 내가 빚은 약주를 ‘홀짝홀짝’ 마시더니 내놓은 술을 모두 비우고는 “술이 잔 밑으로 흘러버리네요”라며 웃었다. 다음 날 연주차 다시 들렀을 때는 “어제 마신 술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요”라고 했다. 작은 술잔 하나가 말과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술문화가 세계인의 입맛과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았다.
연화곡을 만드는 과정도 매력적이다. 연꽃 세 송이에 조곡이 아닌 분곡 한 되를 넣고 오리알 크기로 빚은 다음, 손으로 만든 한지에 싸서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 걸어둔다. 그렇게 21일 정도 지나면 곰팡이가 피어나면서 연화곡이 완성된다. 한지의 미세한 틈으로 공기가 드나들고 그 안에서 곰팡이가 연꽃잎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피어나는 모습은 볼수록 신비롭다.
나는 남도의 거친 조곡으로 만든 누룩 속에 피어난 곰팡이도 좋아하지만, 귀한 연꽃과 분곡이 만나 만들어낸 연화곡의 섬세한 매력에도 빠졌다. 같은 곡물이라도 어떻게 빻고, 어떻게 디디며, 어떤 환경에서 띄우느냐에 따라 누룩의 모습과 향이 달라진다. 여기에 계절과 지역, 사람의 손길까지 더해지니 누룩 하나에도 그 지방과 집안의 삶이 담긴다.
옛 문헌에 등장하는 여러 누룩도 저마다 다른 재료와 제조법, 생명력과 향기를 품고 있다. 그 차이가 다시 사람마다 다른 술맛과 취향을 만들어낸다. 곡물과 물, 온도와 습도, 공기와 미생물, 그리고 사람의 손과 시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누룩이 되고, 그 누룩에서 다시 저마다 다른 술이 태어난다. 누룩을 직접 빚어보니 좋은 누룩은 사람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젖지도 마르지도 않은 고실고실한 상태를 만들어주고,
곰팡이가 숨 쉬고 자리를 잡을 작은 틈을 내어준 뒤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할 일과 자연이 할 일이 따로 있는 셈이다. 그 작은 누룩 한 덩이 속에서 곰팡이가 피어나고, 그 누룩으로 술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옛사람들이 술과 함께 익혀왔던 기다림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사람과 미생물, 곡물과 계절이 함께 만들어가는 자연의 질서를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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