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너 언제 국수 먹여줄 거야?” 한때 결혼을 재촉하며 스스럼없이 건네던 이 말은 이제 조심스러운 금기어다. 그럼에도 그 말속의 국수는 사람과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덕담을 주고받는 환대의 음식이었다.
국수는 밀·메밀·쌀·감자·고구마 등의 곡물과 전분을 반죽해 가늘고 길게 뽑거나 썰어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면’ 또는 ‘면자’라 불렸으며, 잔치국수와 냉면, 칼국수와 비빔국수 등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식탁에 올랐다.
가늘고 긴 면발은 오래 이어지는 생명과 인연을 상징했다. 결혼식과 돌잔치, 회갑연에 국수가 빠지지 않았던 이유다. 국수 한 그릇에는 장수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좋은 일을 이웃과 나누려는 공동체의 정서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을 훔쳐간 국수는 화려한 잔치국수도 건강을 이야기하는 국수도 아니다. 무더운 여름날, 엄마가 샘에서 두레박으로 급히 길어 올린 찬물에 설탕을 듬뿍 풀어 말아주던 하얀 밀국수다. 차가운 물과 달콤한 설탕, 부드럽게 풀어진 면발이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수많은 국수를 맛보았지만, 그 설탕국수를 밀어낼 음식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비빔국수를 좋아하고 나는 설탕국수를 좋아했다. 서로 다른 한 그릇으로 긴 여름을 견디던 부부는 이제 ‘건강한 장수’와 ‘저속노화’를 이야기하며 콩국수를 먹는다. 장수를 기원하던 국수가 이제는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나이 드는 삶을 묻는 음식이 된 셈이다.
처음에는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어느 날 콩가루가 국물 위에서 겉도는 콩국수를 맛본 뒤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둘이서 꽁냥꽁냥 살아가야 할 고립부부인지라, 남편을 위해 강원도 서리태를 들여왔다.
강원도에서 자란 서리태는 알이 단단해 아주 매끄럽게 갈리지지는 않는다. 대신 입안에 오래 남는 고소함과 맑고 청명한 맛이 있다. 콩을 충분히 불린 뒤 끓는 물에서 7분 정도만 삶는다. 지나치게 삶으면 풋풋한 향은 사라지고 메주 냄새가 앞선다. 소금을 콩물의 1%가량 넣어 곱게 갈고, 고운 체에 걸러 껍질을 걷어낸다.
면은 마른 소면보다 생칼국수가 잘 어울린다. 생칼국수는 콩물을 지나치게 빨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씹는 탱글탱글한 식감을 지닌다. 팔팔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떠오른 뒤에도 충분히 익힌 다음 흐르는 찬물에 깨끗이 씻는다. 전분기를 말끔히 걷어내야 서리태의 청명한 맛이 흐려지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가늘게 채 썬 오이를 올린다. 오이의 푸른 향은 콩물에 섞여 사라지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의 맛을 이끈다. 나는 오이야말로 콩국수 안에서 자기 향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재료라고 생각한다. 오이채위에 방울토마토 한 알을 얹으면 전식과 본식 그리고 후식이 한 그릇안에서 완성한다.
더 부드러운 콩물을 원한다면 제주 토종 푸른콩도 좋다. 어린아이의 살결처럼 부드럽고 싱그러운 향이 나지만, 서리태나 노란콩보다 고소함은 엷다. 재료는 자신이 자란 산과 바람, 흙과 물의 이야기를 맛으로 풀어놓는다.
치유음식점 ‘멘토르’를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나는 재료의 산지를 따지는 버릇을 얻었다. 사계절 산과 들을 헤매며 재료를 만졌던 시간은 이제 몸의 감각이 됐다. 계절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체화된 감각이 계절보다 먼저 나를 이끈다.
엄마가 내게 설탕국수를 선물했다면, 이제 나는 오이를 얹은 서리태 콩국수를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 오래 살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정성껏 대접하는 한 그릇이다. 국수는 여전히 길다. 다만 그 길이는 수명의 길이가 아니라, 기억과 사랑이 이어지는 길이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곽경자. 2026. 바다의 향을 발효로 차리는 밥상, 꽃게장.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7-8).
곽경자. 2026. 옛 맛은 오늘의 질문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6-30).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429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