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농업은 사무실에서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작물마다 재배 환경이 다르고, 농장마다 경영 방식이 다르며, 같은 품목이라도 지역과 시장에 따라 문제가 달라진다. 책이나 통계만으로는 농업의 현실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농업 칼럼을 쓰기 위해 최근 농업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농장을 직접 찾아 농업인과 대화하고, 현장에서 보고 느낀 문제와 해결 방향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컨설팅을 할 때 필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농장주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홈페이지와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를 미리 조사하고, 전화 인터뷰를 통해 기본적인 현황을 파악한 뒤 컨설팅 자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약속 시간보다 30분 이상 빨리 도착해 농장과 주변 환경을 먼저 둘러본다. 농장주의 설명을 듣기 전에 고객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농장을 보기 위해서다.
최근 방문한 한 농촌융복합산업체 농장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인터넷에서 본 모습은 활발하게 운영되는 농장이었고,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도 새로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포장박스와 택배 상품, 체험 재료와 판매 상품이 한곳에 뒤섞여 있었고, 오래전에 사용했던 현수막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용도와 유통경로가 다른 물품들이 체계 없이 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정리정돈의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농장주를 잘 알고 있었기에 곧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그분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부지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농장은 하나의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돈이 될 것 같은 품목이 생기면 시작하고,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면 또 도전한다. 하지만 이전에 시작했던 사업은 충분히 정리하거나 체계화하지 못한 채 다음 사업으로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판매 품목은 계속 늘어나고, 관리해야 할 재고도 함께 증가한다. 생산 방식과 포장 방법, 판매 경로와 홍보 방법도 제각각이다. 결국 농장주는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지만 생산성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한 농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농가가 매출을 늘리기 위해 품목을 계속 확대한다. 그러나 품목이 늘어날수록 생산 공정은 복잡해지고, 자재 관리와 재고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품목을 시작할 때마다 시설과 장비를 갖춰야 하고, 홍보와 포장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팔리지 않는 재고와 사용하지 않는 자재만 늘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바쁜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같은 시간과 같은 노력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주력 품목을 육성해야 한다.
주력 품목의 비중이 높아지면 반복 생산을 통해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된다. 작업 공정이 표준화되고 품질도 안정된다. 자재 구매와 재고 관리도 단순해지며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든다. 같은 작업을 반복할수록 숙련도가 높아지고 품목당 생산성도 향상된다. 결국 적은 노력으로 더 높은 매출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작업 매뉴얼을 만들고 직원에게 업무를 맡길 수 있으며, 농장주는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작업자가 아니라 경영자가 될 수 있다. 생산은 직원과 시스템이 담당하고, 농장주는 상품 개발과 마케팅, 고객 관리, 판로 개척 등 농장의 미래를 위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이 농장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반대로 모든 품목을 혼자 생산하고, 혼자 판매하고, 혼자 체험을 운영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부지런해도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바쁠 때마다 가족이 일을 돕는 방식은 일정 규모까지는 가능하지만 지속 가능한 경영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농장이 커질수록 사람의 능력보다 시스템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많은 농업인들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경쟁력 있는 품목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나의 품목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며, 판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큰 경쟁력이 된다.
농업도 이제는 '무엇을 더 할 것인가'보다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품목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경쟁력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노하우를 축적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경영 전략이다. 늘 바쁘기만 한 농장보다 경쟁력 있는 주력 품목을 갖춘 강한 농장이 오래 살아남는다. 농장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가장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 농산물 가공과 6차산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6.22.).
허북구. 2026. 전남 농촌융복합산업, 왜 마케팅이 중요한가.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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