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전남 커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전국 커피 재배 면적 8.0ha 가운데 전남이 4.2ha를 차지한다. 절반이 넘는 규모다. 이제 전남은 단순한 시험 재배지를 넘어 명실상부한 ‘K-커피’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생산 면적 확대와 달리, 커피 품질의 핵심을 좌우하는 발효 공정은 여전히 해외 표준 방식에 머물러 있다. 나무는 남도에서 자라지만, 향을 완성하는 기술은 외부에 의존하는 구조다.
커피 향미는 발효에서 결정된다. 수확한 커피 원두의 점질층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미생물은 당과 단백질을 대사하며 다양한 향기 전구체를 만들어낸다. 워시드, 내추럴, 허니, 아나에로빅(Anaerobic) 등 공정의 차이는 결국 발효 환경의 차이다. 발효는 커피의 ‘두 번째 재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효 커피의 대표 사례로는 시빗 커피(Civet Coffee), 블랙아이보리 커피(Black Ivory Coffee), 위즐 커피(Weasel Coffee) 등이 있다. 이들은 사향고양이나 코끼리의 소화기관을 거친 커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동물 체내 발효 환경을 모사해 인위적으로 발효시키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대만에서는 사향고양이 배설 커피에서 유익균, 즉 선옥균(善玉菌)을 분리·정제·배양한 뒤 소화 발효와 유사한 조건을 조성해 커피를 발효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일본 또한 전통 발효 미생물을 커피와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 발효 문화의 중심에는 국균(麴菌, こうじきん, Koji mold)이 있다. 학명은 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Aspergillus oryzae)로, 쌀·보리·콩 등에 자라며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 같은 효소를 생성한다. 이 효소는 전분을 당으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감칠맛과 향의 기반을 만든다. 된장(味噌), 간장, 아마자케(甘酒) 등 일본 전통 발효 식품의 출발점이 바로 이 국균이다.
일본 가나가와현 오이소의 쇼난 소이 스튜디오(Shonan Soy Studio)는 ‘소이피(SOYFFEE)’라는 제품을 선보였다. 이는 홋카이도산 대두에 커피를 더해 낫토균(納豆菌)으로 발효한 식품이다. 엄밀히 말하면 커피 원두를 낫토로 직접 발효한 것은 아니지만, 자국 발효 미생물과 커피 풍미를 결합한 상업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커피 코지(珈琲麹)’나 ‘커피 아마자케(コーヒー甘酒)’처럼 코지 기술을 응용한 상품도 등장했다. 커피를 단순한 외래 음료가 아니라, 자국 발효 체계 속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커피를 외래 작물로 남겨두지 않고, 자국의 미생물 문화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발효는 단순한 가공 단계가 아니라 지역의 미생물 생태와 전통 기술이 축적된 문화 자산이다. 결국 발효의 주도권이 향미의 주도권이 된다.
전남은 어떠한가. 전남은 장(醬) 문화의 보고다. 지역마다 된장 명인이 있고, 장독대마다 축적된 토착 미생물이 존재한다. 만약 전남산 커피 원두를 지역 된장 균주, 즉 토착 국균과 결합해 제어 발효한다면 어떨까. 이는 단순한 풍미 실험을 넘어 ‘남도 테루아르’를 담은 발효 커피로 확장될 수 있다. 토양과 기후뿐 아니라 미생물까지 지역성을 갖는 커피, 그것이 진정한 K-커피의 다음 단계일지 모른다.
물론 과학적 검증은 필수다. 균주 분리와 동정, 발효 안전성 확보, 향미 분석과 소비자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소이피(SOYFFEE)’나 ‘커피 코지(珈琲麹)’ 사례가 보여주듯, 전통 발효 미생물과 커피의 결합은 공상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산업적 실험은 시작되었다.
전남 커피 산업은 재배 면적 확대라는 1단계를 지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효의 자립이다. 남도 장독대에서 살아온 균주가 커피의 향을 완성하는 순간, 전남산 커피는 단순한 국산 농산물을 넘어 발효 문화가 깃든 지역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다. 나무는 이미 남도 땅에서 자라고 있다. 이제 그 향을 완성할 미생물 역시 남도에서 찾을 때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0. 전남산 커피와 세계의 이색 커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0-10-17).
허북구. 2020. 전남의 커피콩 생산, 발효 커피를 중심축 삼자.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0-10-13).
허북구. 2020. 전남산 커피 그리고 루왁커피와 발효 원두커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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