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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과 예(禮), 공자와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02-26 08: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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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의 현장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제기된다. 농업은 어떻게 사람을 치유하는가.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계절을 기다리는 일은 왜 마음을 낮추고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동양사상의 한 축인 공자의 사유는 의미 있는 통찰을 준다. 공자가 말한 인(仁)과 예(禮)는 단지 윤리 교과서의 문장이 아니라, 오늘의 치유농업 현장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관계의 철학이다.

 

공자에게서 인(仁)은 사람다움의 핵심이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며,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이다. 인(仁)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실천될 때 완성된다. 농장은 본래 관계의 공간이다. 혼자서 씨를 뿌릴 수는 있어도, 함께 가꾸고 나누는 과정에서 농사는 공동체가 된다. 치유농장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작업, 수확 나눔, 식사 모임은 인의 실천이 구체화되는 자리다. 흙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관계는 기능이 아니라 돌봄이 된다.

 

한편 예(禮)는 질서와 태도에 관한 개념이다. 예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공자는 예(禮)를 통해 인간관계의 긴장을 낮추고 조화를 이루려 했다. 치유농업 현장에서도 예(禮)는 중요하다. 농기구를 함께 사용하는 법, 먼저 심은 사람의 노고를 인정하는 태도, 자연을 대하는 겸손한 자세는 모두 예의 확장된 모습이다. 무질서한 공간에서는 마음도 불안해지기 쉽다. 반대로 일정한 리듬과 규칙이 있는 농장에서는 참여자의 감정도 안정된다. 예는 감정의 안전망을 만드는 구조다.

 

치유농업이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을 넘어 지속가능한 모델이 되려면, 인과 예의 구조를 의식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세대통합 농작업은 인의 확장을 돕는다. 어르신의 경험과 청년의 체력이 만날 때 상호 존중의 감정이 자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텃밭 가꾸기는 차이를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장면은 공자가 말한 “함께 사는 도리”를 오늘의 농장에 옮겨 놓는 일이다.

 

또한 예는 치유 프로그램의 틀을 잡아 준다. 작업 전 짧은 인사와 마음 모으기, 수확 후 감사 표현, 식탁에서의 절제된 나눔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참여자들이 서로를 인격으로 대하도록 돕는 장치다. 규칙은 억압이 아니라 안정의 기반이 된다. 치유는 방임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정한 틀 안에서 감정은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이것이 예의 역설이다.

 

공자의 사유는 또한 중용(中庸)의 감각을 강조한다. 지나침도 부족함도 경계하는 태도다. 치유농업 역시 과도한 성과 중심으로 흐르면 본래 목적을 잃기 쉽다. 수확량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자의 변화다. 빠른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천천히 회복되는 감정이다. 중용의 태도는 농장의 속도를 낮추고, 사람의 호흡을 자연의 리듬에 맞추게 한다.

  

결국 인은 관계의 온도이고, 예는 관계의 구조다. 온도만 있고 구조가 없으면 관계는 쉽게 식고, 구조만 있고 온도가 없으면 관계는 경직된다. 치유농업은 이 둘이 만나는 자리여야 한다. 흙을 매개로 서로를 돌보고, 질서를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간. 그 안에서 사람은 다시 사람다움을 회복한다.

 

치유농업을 설계하는 일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관계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택이다. 공자가 말한 인과 예는 농장을 공동체의 학교로, 밭을 수양의 장으로 바꾸는 힘을 지닌다. 농사는 땅을 일구는 일이지만, 치유농업은 마음을 일구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여전히 인과 예라는 오래된 지혜가 흐르고 있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입춘과 우수, 치유의 문을 열다.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2.22.).

최연우. 2026. 수기치인, 공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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