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전남 농정, 공모 사냥꾼 구조를 끊어야 한다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2-25 08:55:20
기사수정

[전남인터넷신문]한 해 농사의 문을 여는 봄맞이가 한창이다. 들녘에서는 씨앗을 준비하고 농기계를 손보며 새 계절을 맞을 채비를 한다. 그러나 농촌의 또 다른 봄은 행정의 달력 속에서 시작된다. 각 부처와 지자체가 내놓은 각종 지원사업과 공모사업이 줄지어 공고되고, 신청과 심사가 이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은 분명 필요하다. 농업은 기후 위기와 시장 개방, 인구 감소라는 삼중의 파고 속에 서 있다. 연구개발과 시설 현대화, 농촌관광과 6차 산업화, 스마트농업과 탄소 저감 사업까지 새로운 과제가 쉼 없이 등장한다. 부처가 다르고, 정책 기조가 바뀌며, 요구 서류와 평가 기준도 매년 달라진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틈을 ‘사업 기회’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공모 경험이 많고 행정 절차에 능숙한 이들이 새로운 사업이 뜰 때마다 빠르게 대응한다. 사업 취지보다는 선정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을 하나의 ‘정차장’처럼 여긴다. 일정 기간 머물다 또 다른 지원사업으로 옮겨가는 방식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이러한 부작용을 의식해 기존 수혜자에게 감점을 주거나 중복 신청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주무 부처가 다르면 중복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농촌관광 사업을 받으면서 동시에 관광 부처의 지원을 또 받는 식의 구조도 존재한다. 제도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사·중복 사업이 반복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의 ‘지속성’이다. 공모에 선정되어 예산이 투입되고, 현수막과 간판이 바뀌지만 사업 기간이 끝나면 실체가 희미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담당 공무원이 교체되고, 추진 주체도 흩어지면서 성과는 기록 속에만 남는다.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아야 할 사업이 일회성 행사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농업과 농촌은 실험장이 아니다. 한 번의 사업으로 끝나는 구조라면 지역에 남는 것은 시설의 노후화와 주민의 피로감뿐이다. 아무리 좋은 시책이라도 실행 주체가 책임감과 장기 비전을 갖지 못하면 성과는 축적되지 않는다. 지원금은 소진되지만 지역의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연구개발비와 각종 지원사업의 신청과 심사가 집중되는 시기다. 이때야말로 선정 기준이 더욱 엄정해야 한다. 사업 계획서의 화려함보다, 과거 사업의 정착 여부와 사후 관리 능력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공모 실적의 숫자가 아니라, 지역에 남긴 변화의 깊이를 평가해야 한다.

 

전남 농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연구개발 공모와 지원사업을 ‘사냥’하듯 좇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토양과 기후, 인적 자원에 맞는 사업을 꾸준히 축적하고, 한 번 시작한 사업을 끝까지 책임질 주체를 세워야 한다.

 

봄은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다. 그러나 아무 씨앗이나 뿌린다고 수확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선정의 순간이 아니라 정착의 시간까지 책임질 사람을 고르는 일, 그것이 농업 정책의 봄맞이여야 한다. 지원사업이 ‘간판 교체’로 끝나지 않고, 지역의 뿌리가 되도록 만드는 것, 지금 우리 농정이 선택해야 할 방향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농업 공모사업, 열심히가 아니라 증명해야 한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6-2-2).

허북구. 2020. 농기평의 농식품 연구개발, 뉴 노멀 시대에 선제적 대응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0-6-25).

0
기사수정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42202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연둣빛 물결’ 일렁이는 봄의 향연, 보성 제2대한다원
  •  기사 이미지 담양 백동리 유채꽃 만개, 봄 정취 물씬
  •  기사 이미지 순천만서 흑두루미·저어새 동시 관찰
전남오픈마켓 메인 왼쪽 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