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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그림과 전남 치유농업에서 음식치유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2-11 09: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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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모네의 그림은 ‘어떤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간대의 빛 조건’을 기록한 회화다. 같은 성당도 아침에는 차갑게, 안개 낀 오전에는 흐릿하게, 정오에는 단단하게, 석양 직전에는 불타듯 달라진다. 그래서 모네의 연작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이 그림은 오전 7~8시의 빛”, “이 그림은 오후 5시의 빛” 같은 시각 일기에 가깝다. 모네를 읽는 열쇠는 색채가 아니라 시간이다.

 

그림을 ‘그가 그렸던 시간대’의 자연광에 가까운 조건에서 보면, 과장된 색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보이는 색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이 주장은 비유가 아니다. 클로드 모네의 의도와 제작 방식, 전시 해석 모두가 ‘빛–시간’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이 ‘시간대의 예술’은 주의 깊게 관찰하면 전남 치유농업의 음식치유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치유농업에서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이 아니라 기억과 감각, 관계와 리듬을 동시에 건드리는 매개다. 그런데 우리가 음식치유를 설계할 때 종종 놓치는 것이 있다. 어떤 요리를 먹는가에 못지않게 ‘어느 공간에서, 언제 먹느냐’라는 조건이다. 모네가 빛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간에 같은 자리를 찾아가 붓을 들었듯, 음식치유도 치유 효과가 가장 잘 살아나는 ‘공간과 시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는 계절별로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가 있다. 여름 해질녘의 바람과 노을, 겨울 해넘이의 낮은 햇빛과 선명한 수평선, 늦가을의 붉은 기운이 남은 잔광. 같은 바다라도 시간대가 바뀌면 감정의 온도는 전혀 달라진다. 그곳에 “노을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식탁”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치유 장치가 될 수 있다.

 

숲도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의 숲은 맑고 긴장을 풀어 주는 느낌을 주지만, 오후의 숲은 포근한 대신 졸림과 무기력을 부를 수도 있다. 달빛이 드는 마당은 고요함과 회상을 불러오지만, 어떤 대상자에게는 불안과 고립감을 자극할 수도 있다. 즉, 같은 장소라도 대상자에 따라 심리적 효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서 음식치유는 ‘메뉴 개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상자의 특성에 맞게 공간을 고르고, 시간대를 정하고, 그 시간대의 감각에 어울리는 음식 재료와 조리법을 맞추는 맞춤 설계가 필요하다.

 

불면과 긴장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저녁의 과한 자극을 피하고, 해가 완전히 기울기 전의 부드러운 빛 속에서 따뜻한 국·죽·차 같은 안정식을 제공하는 편이 낫다. 관계 부담이 큰 사람에게는 군중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 조용한 오전의 바람과 햇빛 아래에서 가벼운 음식을 통해 ‘함께 있지만 부담 없는 식탁’을 만드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반대로 활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의 차가운 공기보다, 몸이 덜 굳는 시간대에 단백질과 따뜻한 반찬, 씹는 감각이 살아 있는 식재로 에너지를 세워 주는 쪽이 적합하다.

 

이 논리를 전남의 치유농업에 적용하면, 전남에서 자란 농산물을 전남의 특정 장소와 특정 시간대에 먹게 함으로써 치유 효과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다. 전남은 바다·갯벌·섬·평야·강·산이 모두 어우러진, ‘공간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지역이다. 여기에 사계절의 빛과 바람, 습도와 냄새가 더해진다. 전남의 식재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그것을 어디서 언제 먹느냐에 따라 체험의 품질은 작품처럼 달라질 수 있다.

 

모네가 빛을 붙잡아 그림의 가치를 높였듯, 전남 치유농업은 시간과 장소를 붙잡아 식탁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 접근은 치유농장 경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치유농업이 지속하려면 대상자의 반복 방문이 필요하고, 반복 방문을 만들려면 “다시 떠오르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음식은 그 기억을 가장 강하게 남기는 매개다. 그러나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수준으로는 관광·체험 시장에서 곧 비슷해진다.

 

차별성은 “전남의 이 장소에서, 이 시간대에만 가능한 한 끼”에서 나온다. 이것은 메뉴가 아니라 경험의 설계이며, 농산물 판매가 아니라 감각의 브랜딩이다. 치유농장이 음식을 도입하는 이유는 먹여서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오게 하기 위해서다. 모네의 그림은 낮에 보면 풍경이지만, 그가 그렸던 시간에 보면 경험이 된다.

 

전남의 음식치유도 마찬가지다. 아무 때나 먹는 한 끼는 식사이지만, 특정 장소와 특정 시간대에 설계된 한 끼는 치유가 된다. 전남이 가진 농산물과 풍경, 빛과 계절은 이미 충분히 강력하다. 이제 남은 일은 그것들을 연결해 ‘전남만의 치유 식탁’을 만드는 일이다. 모네가 빛의 조건을 작품으로 만들었듯, 전남은 시간과 공간의 조건을 부가가치로 바꿀 수 있다. 그때 전남의 음식치유는 콘텐츠가 아니라 산업이 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 농업, AI 시대 식탁을 위한 구독경제를 준비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6-02-10).

허북구. 2026. 먹으며 회복하는 곳 전남, 문화예술과 음식치유·치유음식 관광.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6-01-24).

허북구. 2026. 전남 농업의 활로 모색. 치유음식과 음식치유 마케팅(2026-01-19).

허북구. 2026. 전남 치유농업의 새로운 길, 음식치유. 치유음식과 음식치유 마케팅(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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