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전남 농업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쌀, 과수, 채소와 같은 전통 작목에만 시선을 둔다. 그러나 오래된 신문 자료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전남 농촌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농업’을 실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 1928년, 1939년, 1959년, 1960년대 기사에는 반복적으로 박하(薄荷)가 등장한다. 그것도 단순한 재배 작물이 아니라, 수출을 전제로 한 전략 작목으로서의 박하였다.
1930년대 기사에는 “농업부업상으로 최적의 박하 재배”, “연 30만 근 수출 계획”, “전남이 전국 최대 생산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전남은 박하를 재배해 정유(精油)로 가공하고, 이를 일본과 제3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당시 박하는 멘톨을 추출해 의약품·화장품·방향제 원료로 쓰이는 산업용 허브 작물이었다. 전남 농촌은 이미 ‘먹는 농업’을 넘어, 향기와 성분을 파는 농업을 경험한 셈이다.
1960년대 기사에서도 박하는 계속 등장한다. “박하삼미종”, “명년 12만 근 박하 수출 계획”, “박하 정제품 수출을 위한 관계 당국 간 합의”라는 문구는 박하가 국가 차원의 수출 품목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전남 농가들은 논과 밭 일부를 전환해 박하를 심고, 수확한 잎과 줄기를 증류해 박하유를 생산했다. 작은 면적에서 현금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여성과 노인의 노동이 결합된 농업이었다.
이제 시선을 현재로 돌려보자. 전남에는 여전히 이러한 가능성이 살아 있다. 광양은 국내 최대의 초피나무 재배지다. 초피는 한식뿐 아니라 중국·동남아 음식, 향신료 산업, 기능성 식품 분야에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동남아 출신 결혼이민자가 다수 정착한 전남 지역에서도 향신료 식재료에 대한 안정적인 생활 수요가 이미 형성되어 있어, 전남은 허브·향신료 작물은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갖는다.
곡성의 한 농가에서는 허브 식물을 재배해 동남아 식품 마켓에 납품하고 있다. 이는 전남의 기후와 토양이 허브·향신료 작물에 적합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제는 시장 구조다. 허브와 향신료는 국내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으나 아직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생산량이 급격히 늘 경우, 채소나 과채류와 마찬가지로 가격 폭락 위험이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허브 농업은 처음부터 국내 소비만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수출 위주, 가공 위주, 산업 연계 위주로 설계되어야 한다.
과거 전남의 박하 수출이 가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하는 생잎으로 팔리지 않았다. 정유, 정제품, 성분이라는 ‘가공된 형태’로 시장에 나갔다. 오늘날의 초피, 배초향, 고수 역시 마찬가지다. 건조·분말·오일·추출물로 가공되고, 과자·소스·조미료·차·기능성 식품과 결합된 식품 개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생산량 확대가 곧 소득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전남 농업은 이미 한 번 이 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되살려야 할 시기이다. 이제 전남 농업은 다시 향기를 키워서 소득으로 만들어야 한다. 광양의 초피, 곡성의 허브, 그리고 박하의 기억을 잇는 새로운 향신료 농업이 농가 소득을 지탱하는 산업 농업으로 자리 잡아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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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2020. 특수 과채류 농가, 코로나 19에 무너지지 않도록 대책을.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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