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전남농업기술원이 육성한 참다래 품종 ‘해금’은 현재 도내 500여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지역 대표 소득작목이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된 이 품종은 전남 기후에 적합하고 당도가 높아, 농가 소득 증대와 지역 브랜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 ‘해금’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위기에 놓였다.
문제는 기술원이 보유하고 있던 ‘해금’ 상표권의 존속기간이 2023년 만료된 이후, 별도의 갱신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이공백을 틈타 2024년에 한 민간 영농법인이 동일 명칭으로 상표를 선등록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수년간 ‘해금’ 명칭을 사용해 온 다수의 농가와 유통업체들이 하루아침에 상표권 침해 시비에 휘말리게 되었고, 온라인 판매 페이지 수정, 상품명 변경, 거래 중단 등 직·간접적인 손실을 입은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상표 분쟁을 넘어, 지역 공공 연구 성과에 대한 지적재산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다. 연구기관은 품종을 개발했지만, 그 성과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했다. 기술은 공공 자산이었지만, 지적재산 관리 구조는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문제를 특정 연구자나 개별 기관의 책임으로 돌리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기술 개발과 지적재산 관리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업무이며, 연구자가 관리까지 동시에 담당하는 구조에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후속 기술 개발 자체가 어려워진다. 대학이 산학협력단이라는 전담 조직을 두고 특허와 기술이전을 관리하듯,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고 지적재산은 전문 조직이 책임지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제도적 상식에 가깝다.
특히 품종 개발이나 특허 창출에는 고도의 생명과학·농업공학·육종 기술 등 전문 연구 역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의 세계는 전혀 다른 전문성을 요구한다. 상표와 특허의 출원·갱신, 권리 범위 설정, 브랜드 관리, 가치 평가, 기술이전, 라이선스 계약, 분쟁 대응 등은 법률·경영·산업 정책 영역의 전문 업무다. 연구 성과가 산업 자산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개발 기술 못지않게 지적재산 관리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남 농업 분야에서는 이 두 영역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 전남농업기술원을 비롯한 전라남도 산림연구원, (재)전남바이오진흥원 등 산하 및 출연 기관들이 수십 년간 도비와 국비로 다양한 품종과 기술을 개발해 왔지만, 그 성과물에 대한 상표·특허·품종권 관리는 기관별, 담당자별로 분산되어 있으며, 통합 관리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즉 공공 예산으로 만들어진 지식 자산이 체계적인 공공 관리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제도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일본, 미국, 유럽의 경우 농업 연구기관이 개발한 품종이나 기술은 대부분 국가 단위 지식재산 관리 시스템과 연동되어 관리된다. 권리 상태, 존속기간, 라이선스 가능 여부, 기술이전 담당 부서가 데이터베이스로 통합 관리되며, 만료 전 자동 알림과 갱신 관리 체계가 작동한다. 특히 유럽의 경우 품종보호권 상태가 ‘유효, 만료, 종료’로 명확히 공개되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전남도 차원에서 접근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남도의 농정 시스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도비가 투입된 모든 농업 관련 공공기관의 지적재산권을 전남도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는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일종의 ‘전남 농업 산학협력단’ 또는 ‘전남 농업기술 자산관리센터’와 같은 조직을 두고, 품종·상표·특허·브랜드를 일괄 등록·관리·갱신·이전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농업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재배 노하우가 아니라, 지역의 핵심 지식 자산이자 산업 경쟁력이다. 품종 하나, 브랜드 하나가 수백 농가의 생계와 직결되는 시대에, 지적재산 관리 실패는 곧 농정 실패로 이어진다.‘해금’ 사태는 기술 개발의 책임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전남 농업 지적재산 관리 시스템 자체를 점검하고, 구조적 개선 방향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계기다.
이번 일을 특정 기관이나 연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보다는 전남 농정 전반의 지식자산 관리 구조를 재설계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전남 농정이 ‘기술 개발 중심’뿐만 아니라 ‘기술 자산 관리 중심’으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기후 위기, 전남농업의 해법은 ‘품종 개발’.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5-05-21).
허북구. 2022. 지자체의 작물 품종 육성, 지역 농업 살린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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