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자연의 결핍 시대, 피터 크라크 주니어가 말하는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01-11 08:57:36
기사수정

[전남인터넷신문]현대 사회에서 치유농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농업 활동이 주는 즐거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가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시대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학문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피터 크라크 주니어(Peter Kahn Jr.)다.

 

피터 크라크 주니어는 미국의 환경심리학자로, 인간 발달 과정에서 자연 경험이 갖는 의미를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해 온 학자다. 그는 1950년대 미국에서 태어나 심리학과 환경윤리를 결합한 연구로 학문적 영역을 확장해 왔으며, 현재는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환경심리학과 인간–자연 관계 연구를 이끌고 있다.

 

초기에는 도덕 발달과 환경 인식에 관심을 두었고, 이후 어린이·청소년의 자연 경험, 도시화 속 자연 인식 변화, 기술 환경이 인간 감각에 미치는 영향으로 연구를 넓혀 왔다. 그의 연구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자연과 단절된 채 성장한 인간은 무엇을 잃게 되는가?” 크라크 주니어는 이에 대한 답으로 ‘자연 결핍(Nature Deficit)’과 ‘기준선 이동 증후군(Shifting Baseline Syndrom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기준선 이동이란 세대가 바뀔수록 자연 훼손과 빈약한 자연환경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어린 시절 경험한 자연의 수준이 개인의 기준선이 되고, 그 기준이 점점 낮아지면서 자연에 대한 기대와 감각 자체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치유농업은 단순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다.

 

치유농업은 농업 활동을 통해 인간이 자연과 다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실천이며, 크라크 주니어의 이론으로 해석하면 ‘이동된 기준선을 되돌리는 작업’에 가깝다. 씨를 뿌리고, 작물을 돌보고, 계절의 흐름을 기다리는 과정은 자연의 속도와 리듬을 몸으로 다시 학습하는 경험이다. 이는 빠른 자극에 길들여진 감각을 낮추고, 반복과 축적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인식의 회복을 이끈다.

 

특히 치유농업의 의미는 인간 발달 전 주기에 걸쳐 드러난다. 아동에게는 자연을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환경으로 인식하게 하는 기초 경험을 제공하고, 성인에게는 스트레스와 과잉 정보로부터 벗어나는 회복의 시간을 마련한다. 노년층에게는 과거의 농경 경험과 기억을 불러내며 자기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는 크라크 주니어가 강조한 발달적 관점의 자연 경험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는 또한 자연 경험이 윤리 의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자연과의 직접적 관계가 줄어들수록 환경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책임 의식 역시 약화된다는 것이다. 치유농업 현장에서 흙의 상태를 살피고, 생물의 반응을 관찰하며, 날씨 변화에 몸을 맡기는 경험은 자연을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응답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개인 치유를 넘어 공동체적·환경적 치유로 확장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따라서 치유농업은 몸과 마음을 돌보는 활동이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사회적 실천이다. 피터 크라크 주니어의 생애와 연구는 치유농업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자연과의 관계가 단절된 시대일수록 회복은 더 느리고, 더 반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회복의 현장이 바로 농업이며, 치유농업은 낮아진 자연의 기준선을 다시 세우는 가장 현실적인 공간 중 하나다. 자연을 다시 경험하는 일은 곧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치유농업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치유는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관계에서 시작되며, 그 관계의 회복은 흙 위에서 가장 정직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찰스 테일러의 인정 철학으로 읽는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9.).

최연우. 2026. 에카르트 톨레와 치유농업, 지금 여기의 회복.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8.).

0
기사수정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41965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연분홍 물결의 향연’ 보성군, 제22회 일림산 철쭉문화행사 성황
  •  기사 이미지 관방제림서 뗏목 타고 대나무 목마 즐기고… 담양대나무축제 ‘북적’
  •  기사 이미지 5월 2일 토요일 개최된 제21회 보성녹차마라톤대회
전남오픈마켓 메인 왼쪽 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