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찰스 테일러의 인정 철학으로 읽는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01-10 09:01:22
기사수정

[전남인터넷신문]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와 무의미의 문제를 ‘자아(self)’와 ‘인정(recognition)’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사상가다. 그는 인간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로 이해했다. 이 관점은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상처를 읽어내는 데 유효하며, 오늘날 확산되는 치유농업을 해석하는 철학적 토대가 된다.

 

찰스 테일러는 193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정치철학과 사상사에 깊이 천착했고, 이후 맥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철학자이면서도 현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한 공적 지식인이었으며,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논쟁과 공동체 윤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 저서인 『자아의 원천(Sources of the Self: The Making of the Modern Identity, 1989)』과 『인정의 정치(The Politics of Recognition, 1992)』에서 그는 근대 이후 인간이 전통과 공동체의 의미망을 상실하며 ‘얇아진 자아’를 갖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테일러에 따르면 현대인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는다. 성취와 성과로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면 쉽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인정받지 못한 존재로 남고, 불안과 소진, 자기혐오를 경험한다. 그래서 그는 사회가 개인에게 제공해야 할 핵심 조건으로 ‘존엄의 인정’을 강조했다. 인간은 인정받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치유농업은 중요한 실천적 의미를 갖는다. 치유농업의 본질은 농업 활동의 생산성에 있지 않다. 씨를 뿌리고, 흙을 만지고, 작물이 자라는 시간을 함께 견디는 과정에서 참여자는 다시 ‘쓸모 있는 존재’로 경험된다. 이때의 쓸모는 시장 가치가 아니라, 관계 속 역할과 책임에서 나온다. 이는 테일러가 말한 관계적 자아의 회복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시간의 감각이다. 테일러는 근대 사회가 시간을 직선적이고 가속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빨리 결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로 간주되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끊임없이 채근한다. 반면 농업의 시간은 느리고 순환적이다. 치유농업에서 이 느린 시간은 회복의 조건이 된다. 오늘의 돌봄이 내일의 결실로 이어지지 않아도, 그 과정 자체가 존중받는 경험은 존재의 안정감을 회복시킨다.

 

테일러의 인정 이론은 치유농업 정책과 운영에도 시사점을 준다. 치유 효과를 수치로만 증명하려는 접근은 참여자를 다시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물론 객관적 지표는 필요하지만, 치유의 핵심은 관계 속에서 존엄이 회복되는 경험이다. 이는 숫자 이전의 문제다.

 

따라서 치유농업은 농업의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어떤 인간관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인간을 효율과 성과로만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관계와 의미 속에서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 존재로 볼 것인가. 찰스 테일러의 생애와 사상은 치유농업이 후자의 길 위에 서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치유농업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상처를 ‘고치는 기술’이기 이전에 사람을 다시 인정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에카르트 톨레와 치유농업, 지금 여기의 회복.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8.).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인본주의 심리학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4.).

0
기사수정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419643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연분홍 물결의 향연’ 보성군, 제22회 일림산 철쭉문화행사 성황
  •  기사 이미지 관방제림서 뗏목 타고 대나무 목마 즐기고… 담양대나무축제 ‘북적’
  •  기사 이미지 5월 2일 토요일 개최된 제21회 보성녹차마라톤대회
전남오픈마켓 메인 왼쪽 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