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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회상·인지 자극형 치유 화훼장식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송미진 교수
  • 기사등록 2026-01-09 0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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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노인을 위한 회상·인지 자극형 치유 화훼장식은 꽃을 예쁘게 꽂는 활동을 넘어, 기억·주의·정서가 동시에 회복되도록 설계된 치유 환경이다. 고령기에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보다, 이미 축적된 기억과 감각을 안전하게 불러내고 유지하는 힘이다.

 

꽃과 식물은 말보다 먼저 반응하는 감각 매개체로서, 과거의 장면을 조용히 호출하고 현재의 주의를 붙잡아 치유의 문을 연다. 회상 자극의 출발점은 익숙함이다. 특정 꽃의 색과 향, 잎의 촉감, 화병의 형태는 개인의 생애사와 맞닿은 기억 고리를 건드린다. 국화·백합·카네이션처럼 세대 경험이 공유된 꽃은 결혼식, 장례, 졸업식 등 의례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향이 과하지 않은 허브나 잎 식물은 감각 부담을 낮추면서도 손끝의 촉각을 통해 현재 집중을 돕는다. 이때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꽃 이름이 뭘까요?”보다 “어디서 본 적이 있나요?”라는 물음이 기억의 흐름을 연장한다.

 

인지 자극은 구조화된 선택에서 만들어진다. 화훼장식 치유 프로그램은 복잡하게 구성할 필요는 없다. 전 과정을 요구하기보다 선택–배치–확인의 세 단계만으로도 충분하다. 같은 색 계열에서 두 가지만 고르게 하거나, 짧은 줄기와 긴 줄기를 구분해 배치하도록 하면 주의 전환·분류·순서화가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완성도의 높고 낮음보다 과정의 명료함이 인지 부담을 낮추고 성공 경험을 키운다.

 

치유의 효과는 정서 안정과 함께 갈 때 강화된다. 고령자는 과각성(過覺醒, hyperarousal)이나 불안에 취약하므로, 환경은 조용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작업 시간은 15~20분을 넘기지 않고, 중간에 손을 씻거나 물을 마시는 짧은 회복 구간을 둔다. 꽃의 색은 고대비를 피하고, 도구는 가볍고 미끄럽지 않게 준비한다. 이런 세심한 설계가 집중의 지속과 안전감을 만든다.

 

치유 화훼장식의 또 다른 힘은 이야기를 매개로 한 사회적 연결이다. 말수가 줄어든 노인도 꽃 앞에서는 한마디를 건넨다. “이 색은 봄 같네요.” 같은 짧은 발화가 관계의 시작점이 된다. 그룹 활동에서는 작품을 비교하지 않고 나열한다. 칭찬은 기술이 아니라 선택과 지속에 둔다. “끝까지 해내셨어요.”라는 말은 자기효능감을 지지하는 치유적 피드백이다.

 

치매 초기나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상징화된 주제가 도움이 된다. ‘고향의 봄’, ‘어릴 적 마당’, ‘장독대 옆 꽃’처럼 색과 소재를 제한하면 기억이 단서에 기대어 흐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은 배치와 색으로 드러난다. 이때 진행자는 해석자가 아니라 기록자로 남는다. 참여자의 선택을 그대로 적어 두면, 기록은 다음 회기의 연결고리가 된다.

 

회상·인지 자극형 치유 화훼장식의 성과는 화려함이 아니라 변화의 징후로 평가해야 한다. 작업 전보다 시선이 오래 머무는지, 선택이 빨라졌는지, 손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는지, 회기 후 일상 대화가 늘었는지가 지표다. 단기 만족도보다 반복 참여와 일상 전이가 중요하다. 집에서 물을 주거나 창가에 꽃을 옮겨 놓는 행동이 나타난다면, 치유는 이미 생활로 들어온 것이다.

 

고령사회의 화훼장식은 예술 교육이 아니라 돌봄의 언어다. 꽃은 기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곁에 놓여 스스로 떠오를 시간을 준다. 그 시간 속에서 노인은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회상과 인지를 잇는 치유 화훼장식은, 그렇게 삶의 속도를 다시 사람에게 맞춘다.

 

참고문헌

송미진. 2026. 치유 화훼장식에서 디지털 플로럴 아트.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6-1-3).

송미진. 2026. 네덜란드 호그벡 치매 마을에서 화훼장식의 활용.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7-16).

송미진. 2025. 고령자 대상 치유농업에서 장미 줄기의 경도.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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