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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국민 힐링 음식, 동치미의 미학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전남도립대학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6-01-06 09: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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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우리나라에서 겨울은 김장 담그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골에서는 지금도 겨울철 초입에 김장 담그기 문화가 온 동네에 펼쳐진다. 온 마을이 품앗이로 이어지는 김장  담그기는 밀물처럼 밀려와 축제처럼 행해지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다음 날 새벽이면 엄마는 혼자서 동치미를 담그곤 했다.

 

엄마는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신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장독대 앞에 선다. 김장을 마치고 남은 무시(전라도 사투리로 무)를 조심스럽게 굴려 소금항아리에 넣고 고추, 생강, 마늘, 청각과 함께 정화수로 빚었다. 엄마가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음식인 동치미를 담았던 장면은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의식에 가까웠다. 한약탕을 달이듯, 기도를 올리듯 엄마는 말없이 동치미를 담갔다.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가을무는 인삼보다 좋다’는 속담처럼, 약성이 강한 가을 무로 담근 동치미는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였다는 사실을. 매서운 겨울바람과 싸우며 장독대에서 익어가는 동치미는 그렇게 독한 약성을 지닌 겨울의 보약으로 탄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텍스트 해체 선언에 동의하고,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조주의로 회귀하게 되는 지점에는, 엄마의 기도에 담긴 불멸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설명 이전에 본유관념으로 내재된 신성이다. 숭엄한 기도는 언제나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김장 후 남은 재료들로 빚어낸 동치미가 서민의 최고 보약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겨울의 동치미와 한 쌍으로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고구마다.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적어도 1970년대까지 고구마 더미는 겨울철 농촌 안방의 중심에 자리했다. 농한기로 활동량이 줄어든 어른들의 밥상에도, 올망졸망 모여 앉아 고구마를 나눠 먹던 아이들의 자리에도 동치미는 빠지지 않았다.

 

동치미가 ‘겨울의 김치’라는 뜻의 한자어를 넘어, 지금의 순수한 우리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구마라는 서민 음식의 동반자가 있었다. 고구마의 퍽퍽함을 씻어주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은 겨울 식탁의 균형이자 위안이었다.

 

‘고려인삼’과 대등하다는 가을 무의 효능을 본능적으로 꿰뚫고, 이를 발효라는 자연의 기술로 완성한 존재는 다름 아닌 엄마라는 본유관념의 힘이다. 동치미는 엄마라는 최고 예술가가 남긴 역작이다. 우리 서민에게 ‘동치미’라는 단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이유에는, 엄마의 서사가 고스란히 존재한다.

 

무는 지역에 따라 무수, 무시라고도 불리며,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불교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에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했다. 사계절 재배가 가능하지만, 특히 가을 무는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조직이 치밀해지고 영양 성분이 뿌리에 집중된다. 비타민, 칼슘, 식이섬유 함량이 크게 증가하는 이유다.

 

이 가을 무가 발효를 거쳐 동치미로 완성되면, 각종 유기산과 유익 미생물이 결합해 겨울철 면역과 소화, 대사에 기여하는 치유 음식으로 거듭난다. 특히 장내 세균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겨울을 이겨내는 서민의 보약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을 무는 비타민 C가 무 100g당 약 20~25mg이 함유되어 있어 겨울철에 귀한 비타민 공급원이며, 기관지 건강과 감기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전국민이 혈당과 비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날, 동치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100g당 13kcal에 불과한 낮은 열량, 수용성·불용성 식이섬유의 조화는 동치미 국물 속 유산균의 활동을 돕는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고, 불용성 식이섬유는 장운동을 촉진해 배변을 돕는다. 동치미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겨울철 우리 몸을 조용히 돌보는 자연의 소화제이자 면역제다.

그래서 겨울의 동치미는 언제나 조용하다. 엄마의 기도처럼, 소리 없이 그러나 깊게 우리를 치유한다. 이것이 동치미가 지닌 미학이며,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서민의 철학이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5. 변동불거의 시대, 가장 오래된 위안 막걸리 한 잔.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29).

곽경자. 2025. 스트레스가 많은 연말, 엄동설한 상추로 디톡스해볼까.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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