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인간을 결핍과 병리의 대상으로만 보던 기존 심리학의 시각에서 벗어나, 성장과 가능성의 존재로 이해하고자 한 인본주의 심리학의 대표적 이론가다. 뉴욕 브루클린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해리 할로의 연구실에서 영장류 행동을 연구했다.
이후 브랜다이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인간의 동기, 창조성, 자아실현에 대한 연구를 심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불안과 파괴가 일상이 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매슬로우는 “인간은 무엇이 부족한가”가 아니라 “인간은 어떻게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매슬로우의 대표 이론인 욕구 위계 이론은 인간의 욕구를 ① 생리적 욕구, ② 안전 욕구, ③ 사랑과 소속의 욕구, ④ 존중 욕구, ⑤ 자아실현 욕구로 설명한다. 흔히 피라미드 구조로 도식화되지만, 매슬로우 자신은 후기 저작에서 이 욕구들이 엄격한 단계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에 따라 중첩되고 유동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특히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가 왜곡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치유란 단일 증상을 제거하는 행위가 아니라 욕구 흐름 전체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치유농업은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을 해석하는 데 매우 적합한 환경적 틀을 제공한다.
농업과 자연환경은 우선 ① 생리적 욕구와 ② 안전 욕구를 동시에 안정시키는 조건을 갖춘다. 흙을 만지고 햇빛과 바람을 느끼는 감각 경험은 신체 리듬을 회복시키고, 계절에 따라 반복되는 농작업은 예측 가능성과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한다. 이는 실내·시설 중심의 통제된 공간에서 장기간 긴장을 경험한 현대인에게 기초적인 회복의 토대가 된다.
치유농업은 또한 사랑과 소속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회복시키는 장이다. 함께 씨를 뿌리고 작물을 가꾸며 수확을 나누는 과정은 공동의 목표와 리듬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말로 관계를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있음’의 감각을 경험한다. 매슬로우가 말한 소속 욕구는 감정적 교류 이전에 존재의 공유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농업 활동은 매우 효과적인 매개가 된다.
존중 욕구 역시 치유농업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작물과 생명을 돌보는 경험은 분명한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고, 수확이라는 가시적 결과는 자기효능감과 성취감을 강화한다. 매슬로우가 강조했듯 건강한 존중 욕구는 타인의 평가보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치유농업은 이 내적 존중을 축적하는 구조를 갖는다.
궁극적으로 치유농업은 자아실현 욕구를 향한 토대를 제공한다. 자아실현은 특별한 재능을 과시하는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자기답게 살아가는 과정이다. 계절의 흐름을 이해하고 기다림과 돌봄의 가치를 배우며, 생명의 순환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경험은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게 한다. 이는 매슬로우가 말한 ‘존재 욕구(being needs)’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매슬로우는 치유농업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인본주의 심리학은 치유농업을 해석하는 이론적 틀로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 관점에서 치유농업은 개별 프로그램의 효과를 넘어, 인간이 다시 인간다워질 수 있도록 돕는 생활 환경의 설계라 할 수 있다.
흙과 자연, 관계와 역할이 어우러진 농업의 장에서 인간은 결핍의 존재에서 성장의 존재로 이동한다. 오늘날 치유농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매슬로우가 평생 탐구한 ‘온전한 인간’을 향한 가장 현실적인 실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환경이 치유를 이끄는 방식, 제임스 깁슨의 어포던스와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2.).
최연우. 2025. 치유농업 현장에서 실천하는 에이미 커디의 프레즌스.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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