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과 치유환경은 흔히 자연의 힘으로 설명된다. 흙과 식물, 바람과 햇빛이 사람을 낫게 한다는 서술은 직관적이다. 그러나 같은 농장,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회복의 깊이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자연 그 자체보다, 자연을 어떻게 함께 경험하게 하느냐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심리학자 에이미 커디((Amy J. Cuddy, 1972-)가 말한 사람의 존재 방식, 즉 ‘프레즌스(Presence)’는 치유농업 현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에이미 커디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로, 하버드 경영대학원(HBS) 교수로 재직하며 비언어적 행동과 자기인식, 대인관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그녀는 2012년 국제 지식·아이디어 공유 컨퍼런스(TED, Technology · Entertainment · Design) 강연을 통해 ‘몸의 태도가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라는 메시지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이후 『Presence』라는 저서를 통해 프레즌스를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온전히 열려 있는 상태”로 정식화했다. 학문적 논쟁도 있었지만, 커디의 연구가 던진 질문인 “사람의 존재 방식이 타인의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치유농업 현장에서 프레즌스는 프로그램의 기법보다 먼저 작동한다. 농장 안내자나 치유프로그램 진행자는 설명자가 아니라, 환경의 리듬을 몸으로 전달하는 매개자다. 그가 어떤 속도로 걷는지, 말을 시작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지, 참여자의 움직임을 기다릴 줄 아는지에 따라 공간의 긴장도는 달라진다. 목소리가 아무리 부드러워도 몸이 앞서가면 참여자는 조급해진다. 반대로 말수가 적어도 자세와 시선이 안정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낮춘다.
프레즌스를 실천한다는 것은 ‘자신감 있는 자세’를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치유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환경과 몸의 정합성이다. 밭에서는 허리를 과하게 세우기보다 흙을 바라보는 각도가 안정감을 준다. 숲길에서는 보폭을 줄이고 시선을 낮추는 것이 공간의 결에 맞다. 온실에서는 손을 크게 휘두르기보다 식물의 잎과 줄기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이 긴장을 풀어준다. 프레즌스는 공간을 지배하는 몸이 아니라, 공간에 조율된 몸에서 생긴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정지와 침묵의 사용이다. 치유프로그램은 종종 설명과 활동으로 가득 차지만, 프레즌스가 살아 있는 진행자는 멈출 줄 안다. 밭 가장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10초, 바람 소리와 흙냄새를 함께 느끼는 짧은 침묵은 많은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때 진행자의 자세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일수록, 참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에 들어간다.
프레즌스는 치유농업의 권위 방식도 바꾼다. 지시형 언어와 잦은 통제는 진행자의 불안을 드러낸다. 반대로 단순한 동작, 절제된 말, 기다림의 태도는 신뢰를 만든다. 이는 참여자에게 자율성을 돌려주고, 각자의 리듬을 회복하게 한다. 치유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것’임을 몸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따라서 치유농업에서 프레즌스는 기술이 아니라 훈련된 태도다. 자신의 호흡과 속도를 먼저 정돈하고, 그 상태를 사람과 환경에 전이시키는 능력이다. 에이미 커디의 프레즌스는 회의실의 리더십을 넘어, 밭과 숲, 온실과 마당에서 더 깊이 작동한다. 농장 안내자와 치유프로그램 진행자가 그 자리에 어떤 존재로 서 있는가? 그것은 치유환경의 질을 결정한다. 자연은 늘 그곳에 있다. 치유는, 그 자연 앞에 서는 우리의 존재 방식에서 시작된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치유농업과 스티븐 켈러트의 바이오필리아 이론.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26.).
최연우. 2025. 치유농업과 어니스트 베커의 ‘죽음의 부정’ 이론.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21.).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419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