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은 흔히 자연이 주는 위로, 농촌의 정서적 안정 효과로 설명된다. 흙을 만지고 식물을 기르며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서술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만, 왜 이러한 경험이 지속적인 회복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배경에서 심리학자 에드워드 디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제시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은 치유농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효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자기결정이론은 인간이 스스로 동기화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세 가지 기본 욕구를 제시한다.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다. 자율성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이며, 유능감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능력의 경험, 관계성은 타인이나 환경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의미한다. 이 세 요소가 충족될 때 인간은 외부 보상 없이도 행동을 지속하고, 심리적 안정을 회복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치유농업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 세 가지 욕구가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충족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자율성이다. 치유농업 활동은 정해진 정답이나 성과 목표를 강요하지 않는다. 씨를 언제 심을지, 어느 만큼 물을 줄지, 어떤 속도로 작업할지는 참여자의 선택에 맡겨진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자신의 몸 상태와 감정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는 경험은, 일상에서 쉽게 박탈되었던 자율성을 회복하게 만든다. 이 선택의 여지가 치유농업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유능감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식물이 자라고, 수확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노력과 결과가 눈앞에서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실패도 있다. 그러나 농업의 실패는 시험의 낙제처럼 낙인으로 남지 않는다. 다시 심고, 다시 기다리면 된다. 이 반복 속에서 참여자는 “나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회복한다. 이는 치료적 대화보다 훨씬 강력한 심리적 보상으로 작용한다.
관계성은 치유농업이 가진 가장 깊은 차원이다. 여기서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고, 흙, 식물, 계절, 날씨와의 관계까지 포함한다. 함께 밭을 가꾸는 사람들과의 느슨한 연대, 말없이 곁에 있는 식물과의 정서적 교류는 경쟁이나 평가가 배제된 관계 경험을 제공한다. 관계를 맺되, 소모되지 않는 방식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자기결정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치유농업은 특정 프로그램이나 기법을 수행해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 충족되는 환경 자체가 치유의 조건을 형성한다. 그래서 치유농업의 효과는 단기 체험보다 반복적 참여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외부에서 동기를 주입하지 않아도, 사람 스스로 다시 농장에 오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치유농업이 지속가능한 회복 모델로 주목받는 이유는 자연의 힘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심리 욕구가 가장 무리 없이 충족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디시와 라이언의 이론은 치유농업을 감성이나 경험담의 영역에서 끌어내어, 왜 효과가 지속되는지를 설명하는 과학적 언어를 제공한다. 이제 치유농업은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을 넘어, 인간 동기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구조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자기결정이론을 정립한 에드워드 디시(Edward L.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M. Ryan)은 현대 동기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디시는 1940년 미국에서 태어나 로체스터대학교(University of Rochester) 교수로 재직하며 인간의 내적 동기와 자율성 연구를 선도해 왔다. 미국에서 1953년에 태어난 라이언은 디시의 오랜 연구 동반자로,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동기, 웰빙, 정신건강 분야로 이론을 확장했다.
두 학자는 1970년대부터 공동 연구를 통해 보상 중심의 행동이론을 비판하고, 인간이 스스로 성장하고 회복하는 조건을 설명하는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을 체계화했다. 이 이론은 현재 교육, 조직관리, 의료, 스포츠, 복지, 치유 분야 전반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으며, 치유농업의 구조적 회복을 설명하기에도 좋은 이론이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레이첼과 스티븐 카플란의 주의 회복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18.).
최연우. 2025. 숲 치유, 치유농업: 유리 브론펜브레너의 생태체계이론과 치유적 환경 이해.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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