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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치유밥상, 엄마의 부뚜막 식초와 무생채굴초무침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전남도립대학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5-12-16 09: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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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나의 고향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이다. 12월이 오면 우리 집 밥상에는 어김없이 석화, 그 러니까 굴이 오른다. 그것은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이자, 엄마가 계절과 몸을 동시에 챙기 던 생활의 의식이었다. 엄마는 12월 내내 오일장에 나가 석화를 사 오셨고, 막내였던 내 손을 꼭 잡고 집 뒤 산 아래 밭으로 향하셨다. 어린 나에게 그 길은 늘 가슴 설레던 소풍이자 배움 의 시간이었다. 밭에 도착하면 엄마는 말없이 무를 두어 개 쑤욱쑤욱 뽑아 손톱으로 껍질을 벗기고 한입 베어 물었다. 


그 무는 재래종 조선무였다. 나는 그 무가 내 어린 시절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줄은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훗날 “선생님 다리가 조선무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또 “다리 예뻐지는 방법으로 책 쓰시면 꼭 사볼게요”라는 농담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엄마가 떠올랐다. 


“맛이 달지야? 소화가 잘돼야 공부도 잘하는 거다.” “내 막내딸 피부도 곱고 다리도 무다리처 럼 되거라.” 엄마의 말처럼 나는 키가 무처럼 쑤욱 자랐고, 다리는 조선무 같다는 말을 들으 며 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피부 결이 곱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겨울철 장독대 위에서 살얼음이 얼어 있던 생굴을 겁 없이 먹여주던 엄마의 손길과 무의 영양소가 함께 작용한 결과 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엌으로 돌아오면 무채를 써는 손이 엄마의 것인지 내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햇살을 머금은 햇고춧가루로 무채를 버무리고, 장독대에서 한 보시기 떠온 생굴을 내 입에 행사처럼 넣어주시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왕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갓 볶은 깨와 설탕을 넣은 뒤 엄마는 꼭 한 가지를 잊지 않으셨다. “야아, 바다 음식에는 꼭 식초를 넣는 거란다.” 엄마는 부뚜막에 있던 식초를 붓는 듯 쏟아 넣고는 “맛이 어떻냐”고 물으시며 웃으셨다. 


고춧 가루 묻은 굴 한 움큼을 내 입에 넣어주시던 그 웃음. 아마도 그 부뚜막 식초를 먹고 자란 내 가 식초 연구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예정된 삶의 방향이었을 것이다. 지난 11월,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 테라마드레’ 행사에서 식초 컨퍼런스를 오가던 중, 한 셰 프가 하루에 20리터 말통 식초를 다섯 개나 쓴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내 눈앞에는 엄마 의 고향이 떠올랐다. 해남군 마산면 바닷가, 넓은 갯벌을 품었던 바다는 지금은 국가시책이라 는 이름 아래 통째로 사라졌다. 사계절 바다가 내어준 시퍼렇게 생생한 음식을 먹으며 엄마는 외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큰딸로 자라났다. 


엄마는 사계절 바다가 내어준 시퍼렇게 생생한 음식을 먹으면서 외할머니 사랑을 받고 큰딸로 성장하셨다. 외할머니는 큰 아들이 일본동경대학을 나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는데 6.25때 사 상혁명가로 돌아가신 후 가슴앓이를 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렇지만 난 외 할마니가 자주 느껴진다. 외할머니의 식초제조나 음식솜씨가 엄마에게 전해졌고, 그것은 다시 내 손길 위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는 것은 모든 오염을 품고도 스스로를 정화해내는 무서운 단단함을 뜻한다. 


바다 음식이 단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다 사람들은 생득적으로 마지막 분해자이자 해독자인 식초를 곁에 두고 살아온 존재들이다. 무생채굴초무침은 나이 들어 가는 내 몸을 엄동설한으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기도 하는 굴은 '아연, 철분, 칼슘 등 미네랄과 단백질, 아미노산, 비타민 B12, 타우린이 풍부해 노화로 잃어버리기 쉬운 면역력 강화, 피부 미용, 남성 활력 증진 등에 도움 을 준다.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혈류량이 줄어들기 쉬운 이맘 때 빈혈을 예방하며, 타우린은 콜레스테롤 감소 및 혈압 조절에 효과적이니 겨울철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 중의 하나로 굴밥 상을 차리는 일이다. 


식초는 단순한 신맛이 아니다. 세대를 건너 몸이 기억하는 맛이며, 살균과 해독, 소화를 돕는 생활의 지혜다. 나에게 식초는 연구 대상이기 이전에, 엄마가 겨울마다 차려주던 치유의 방식 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엄마의 엄마라는 기억을 발효시키며, 식초라는 이름의 시간을 천천 히 빚고 있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5. 영혼을 치유하는 DNA 소울푸드, 김장김치.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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