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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치유하는 DNA 소울푸드, 김장김치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대표, 전남도립대학교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5-12-09 08: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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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언니가 40년 넘게 김장을 해주고 계시지만, 갓 버무린 김장김치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해 갖 담근 김치맛을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 하고 누구집이 김장을 하나하고 혼자만의 탐색전을 벌인다. 김장 직후에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맛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김장은 마을 전체의 축제이자 노동이었다. 김장철이면 동네는 한 달 내내 고춧가루와 마늘 향으로 가득 찼고, 김장을 하는 집에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손을 보탰다. 남자들은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마당에 내려놓고, 할머니·엄마·아이들이 둘러앉아 손질을 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준비는 밤이 되어야 절임 배추를 마무리하며 끝났고, 다음 날 짚단 위에 정갈하게 올려진 배추는 지금도 꿈길에 자주 떠오른다.

 

농촌 노동이 기계화되며 품앗이 문화가 사라졌지만, 김장만큼은 여전히 품앗이가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풍경이다. 김장을 하는 날이면 이웃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김장 소식은 마을 전체에 금세 퍼진다. 김장을 돕는 집에서는 점심을 대접하고, 돕는 이들은 그 자리에서 갓 찢어 먹는 김치 한 점으로 겨울을 맞을 힘을 얻는다.

 

손으로 쭉 찢어 입에 넣는 그 순간, 눈이 맑아지고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김장은 단순한 음식 준비가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채우는 의례였다. 소금에 절인 배추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마늘과 생강 냄새, 양념을 버무릴 때의 따뜻함. 이 모든 감각은 몸을 통해 기억된다.

 

김장은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한 저장 기술이었고, 동시에 가족과 마을이 함께 삶의 무게를 나누는 공동체 의식이었다. 김장 기억이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 경험이 우리 몸과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손은 배추 한 포기에도 정성을 쏟는다. 부드러운 배춧잎을 펼쳐 양념을 차곡차곡 넣고, 포근하게 감싸 넣는 움직임에는 세대를 이어온 돌봄의 기술이 담겨 있다.

 

그 옆에서 묵묵히 양념을 건네는 언니의 표정에는 ‘함께 한다’라는 기쁨이, 고춧가루 묻은 손끝에서는 가족의 관계가 다시금 촘촘히 엮인다. 김장은 말 없는 대화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다. 음식은 결국 사랑을 드러내는 가장 일상적인 매개체가 된다.

 

김치는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다. 그러나 김치의 발효는 미생물 작용보다 사회적·문화적 의미가 더 크게 작동하는 독특한 음식이다. 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품위, 영양이 깊어진다. 그 과정에는 기다림이 필요하고, 그 기다림은 인생과 닮아 있다. 급하게 익힌 김치는 깊이가 없고, 천천히 시간을 견딘 김치는 결국 제 맛을 찾아간다. 사람도 그렇다.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고, 온기가 필요하다.

 

김장이 주는 치유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손의 온기, 기다림, 함께함, 그리고 시간이 만든 깊은 맛. 김장은 몸을 채우는 저장식품이자 마음을 채우는 치유 의례이며, 세대를 잇는 문화적 처방전이다. 김치가 천천히 익어가듯 우리도 시간을 견디며 성숙해지고 회복된다. 그래서 한국인은 누구나 김장김치를 떠올리면 따뜻함과 그리움을 느끼고, 자연스레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다.

 

김장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몸속에 새겨진 기억의 DNA이며, 영혼을 다독이는 소울푸드다. 그리고 그 치유의 맛을 찾는 일은 매해 겨울, 우리가 다시 삶을 견디고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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