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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자라는 농장, 데이비드 콜브의 경험학습모형과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5-10-31 08: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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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은 농업활동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얻는 것을 넘어, 개인의 삶을 재구성하는 ‘경험의 교육장’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심었는가’보다 ‘어떻게 배우고 변화했는가’이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데이비드 콜브(David Kolb, 1939~)가 제시한 ‘경험학습모형(Experiential Learning Model)’은 치유농업의 교육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틀을 제공한다.

 

그는 인간의 학습을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경험 → 성찰 → 개념화 → 실행’의 순환과정으로 설명했다. 이는 농업 현장에서 이뤄지는 치유 프로그램이 단순한 체험을 넘어, 내면적 성찰과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설명해 준다.

 

콜브의 경험학습이론은 네 단계의 순환구조로 이루어진다. 첫째, 구체적 경험(Concrete Experience) 단계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이다. 치유농장에서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험은 감각적이며 정서적이다.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으로서의 출발점이 된다. 예를 들어 노인요양시설의 치유농업 프로그램에서 참여자가 직접 허브를 심고 향을 맡을 때, 그 감각은 기억과 감정, 생의 의미를 동시에 불러낸다.

 

둘째, 성찰적 관찰(Reflective Observation) 단계는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왜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이 활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스스로 묻는 과정이다. 치유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이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의 해석이다. 참여자들은 흙을 만지는 동안 떠오른 감정이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느낀 치유의 순간을 언어화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신체 활동이 ‘의미 있는 경험’으로 전환된다.

 

셋째, 추상적 개념화(Abstract Conceptualization) 단계는 경험과 성찰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개념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즉, “내가 느낀 평안함은 자연의 리듬에 맞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식으로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치유농업에서는 이 단계가 특히 교육적 의미를 가진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느낀 감정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면서, 생명과 순환, 공존의 가치를 학습한다. 이를 통해 농업은 ‘자급의 경제활동’이 아니라 ‘생명의 철학’이 된다.

 

마지막으로, 적극적 실험(Active Experimentation) 단계는 배운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단계다. 참여자는 농장 밖 일상으로 돌아가 식물을 기르거나, 지역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며 새로운 행동을 시도한다. 이는 단순한 체험의 재현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이다. 치유농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 지점, 즉 경험의 지속적 순환과 삶의 변화에 있다.

 

콜브는 이 네 단계를 ‘순환적 학습 사이클’이라 불렀지만, 실제로는 나선형 구조에 가깝다. 한 번의 경험이 다음 경험의 토대가 되어, 점차 더 깊은 통찰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치유농업 현장에서 참여자들은 매주 반복되는 농사활동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체험하고,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이렇게 콜브의 모형은 치유농업을 단순한 여가나 심리치료가 아닌 ‘생애학습(lifelong learning)’의 장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모델을 적용한 치유농업 프로그램 설계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첫째, 교육적 설계(educational design) 측면에서 치유농업은 체험활동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경험의 순환구조’를 기반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즉, 활동 후 반드시 ‘성찰의 시간(reflection time)’을 두고, 이를 통해 개인의 감정과 생각이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심리치유(psychological healing) 측면에서는 성찰과 개념화의 단계를 통해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와 회복(resilience)가 촉진된다. 자연과의 교감은 단순한 정서 안정이 아니라 자기통찰의 매개가 된다. 셋째, 사회적 통합(social inclusion) 측면에서는 공동체적 실천이 강화된다. 콜브의 모델에 따르면 학습은 개인의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된다. 치유농업의 집단활동은 바로 이런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의 장이다.

 

따라서 콜브의 경험학습모형은 치유농업을 ‘배움의 농업’으로 승화시킨다. 단순한 원예치료나 농작업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배우는 과정’이다. 씨앗을 심는 일은 곧 자신 안의 변화를 심는 일이며, 계절의 순환은 곧 인간의 성장과 닮아있다.

 

치유농업의 현장은 교실보다 넓고, 교재보다 깊다. 콜브가 말한 학습의 본질, 즉 “배움은 경험을 통해 의미를 재창조하는 과정” 은 바로 흙 위에서 실현된다. 자연은 교사이고, 흙은 교재이며, 경험은 곧 배움이다. 치유농업이란 결국 ‘배움이 자라는 농장’, 인간이 다시 자연과 연결되는 교육의 재탄생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스키너의 강화이론과 치유농업, 자연이 주는 보상의 심리학.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27.).

최연우. 2025. 존 볼비의 애착이론과 치유농업의 정서적 의미.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21.).

최연우. 2025.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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