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영광 법성포의 여름은 단오로 시작된다. 바닷바람이 불고, 북소리가 울리면 마을 사람들은 제단 앞에 모인다. 용왕에게 풍어와 안녕을 비는 용왕제(龍王祭)가 열리고, 그 뒤를 잇는 선유놀이(船遊놀이)에서는 배 위에 흥과 노래가 넘친다.
이 바다의 제의와 놀이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삶의 방식이다. 그 삶의 맥락은 오늘날에도 영광 법성포 굴비정식이라는 음식문화로 이어진다. 영광의 바다는 이렇게 제의와 예술, 그리고 음식이 한 생명의 서사로 엮여 있는 곳이다.
영광의 용왕제는 바다를 삶의 근원으로 여긴 사람들의 경외와 감사의 의례다. 법성포는 조선시대부터 조운선이 오가던 대표 항구였고, 수많은 어민이 바다에서 생을 일구었다. 그들에게 바다는 축복이자 공포였다. 그래서 바다에 나서기 전, 마을 사람들은 제단을 세우고 용왕에게 제를 올렸다.
제관은 흰옷을 입고 정갈한 손으로 바닷물을 떠 헌수하고, 풍어와 무사귀환을 비는 축문을 읽는다. 북과 징의 장단이 울리고, 파도와 장단이 섞여 신과 인간의 경계가 잠시 허물어진다. 그 순간, 용왕은 인간의 정성과 예를 기뻐하며 굴비를 선물로 내놓는다. 그래서 굴비는 단순한 생선이 아니라 신의 축복이자 바다와 인간이 맺은 약속의 증표가 되었다.
용왕제가 끝나면 이어지는 것이 선유놀이다. ‘배를 타고 노니는 놀이’라는 뜻처럼, 이는 노래와 춤, 흥과 연대의 축제다. 어민들은 장식한 배를 띄우고, 장구와 피리, 꽹과리의 소리가 파도 위로 퍼진다. 여인들은 물결 위에서 춤을 추고, 청년들은 노를 저으며 노래를 부른다.
이 놀이는 바다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친근한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바다와 익숙해지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굴비는 그 교유의 대가이며, 바다와 공존한 삶의 결실이다.
이곳 사람들의 삶은 마치 초원의 유목민이 말을 타고 대지를 달리듯, 바다 위를 달리며 펼쳐진다. 몽골의 초원에서 남녀노소가 말을 타고 유영하듯, 법성포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생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바다는 곧 푸른 초원, 바람은 삶의 호흡이다. 초원의 말이 그들의 발이라면, 법성포의 어선은 그들의 날개다.
그 바다 위에서 건져 올린 굴비는, 바다의 은혜이자 인간의 노동이 합쳐진 예술품이다. 영광의 천일염은 그 바다의 햇살과 바람이 만든 선물이다. 염분이 높고 미네랄이 풍부한 영광의 염전 소금은 짜지 않으면서도 단맛이 돈다. 이 천일염이 굴비의 살 속으로 스며들며 감칠맛을 완성한다.
염전의 햇살, 바람, 바닷물, 이 세 요소는 굴비의 재료이자 예술의 재료다. 결국 영광굴비는 소금의 결정과 바람의 결이 어우러진 조각 작품이며, 영광 굴비정식은 법성포 사람들의 바다 철학이 담긴 식탁이다. 한상 가득 펼쳐진 법성포 굴비정식은 그 자체로 한 폭의 바다 풍경이다. 노릇하게 구워진 굴비와 제철 반찬들이 바다의 빛깔처럼 배열되어, 한 접시 한 접시마다 영광의 바람과 소금, 햇살이 배어 있다.
굴비에는 단순히 어류의 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영광의 햇볕과 바람, 소금,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와 교유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인식과 삶이 녹아 있다. 법성포의 굴비정식은 바다의 제의와 놀이, 그리고 삶의 지혜가 한 상에 담긴 예술이다.
영광의 음식문화는 이렇게 제의(祭儀), 놀이(遊戱), 식(食), 그리고 염(鹽)이 하나의 연극처럼 엮여 있다. 용왕제가 서사의 서막이라면, 선유놀이는 중반의 클라이맥스, 굴비정식은 여운이 남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천일염은 그 모든 장면을 빛나게 하는 조명이다.
바다의 신에게 바치던 제물의 의미가 오늘날 우리의 밥상 위로 내려와, 여전히 감사와 절제의 정신을 일깨운다. 영광의 바다는 여전히 바람이 많고, 그 바람 속에서 굴비는 말라간다. 그러나 그 마름은 소멸이 아니라 숙성이다. 바람은 굴비를 익히고, 태양은 소금을 익힌다. 바다는 그 두 작품을 이어주는 거대한 캔버스다.
용왕제의 북소리, 선유놀이의 흥, 염전의 햇빛, 그리고 굴비의 짠맛은 모두 공존의 다른 이름이다. 전라도의 음식이 예술이라면, 영광의 굴비는 그 예술 속에 깃든 소금의 철학과 바람의 향기, 그리고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인간의 서사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문학과 영화의 풍경에서 만난 장흥 회진면의 열무된장물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2).
허북구. 2025. 광양버꾸놀이로 읽는 광양숯불고기.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1).
허북구. 2025. 동편제로 읽은 구례 산나물 정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1).
허북구. 2025.. 전라도 호남선 음식의 적자, 나주밥상. 세오와 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