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과 치유농장은 ‘좋은 의도’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누구를 어떻게 돕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숫자와 시간, 절차 속에 새겨 넣을 때에만 사업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지점을 분명히 해주는 틀이 바로 SMARTER다. SMART는 목표를 구체성(Specific), 측정가능성(Measurable), 달성가능성(Achievable), 관련성(Relevant), 기한(Time-bound)으로 정돈하는 최소 문법이라면, SMARTER는 여기에 평가(Evaluated)와 인정/재인식(Recognized)을 덧붙여 목표를 “살아 있는 관리 체계”로 전환한다.
이 개념의 뿌리는 1981년 『Management Review』에 실린 조지 T. 도런(George T. Doran)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당시 미국 워싱턴 워터 파워 컴퍼니(Washington Water Power Company)에서 기업계획 담당 디렉터로 활동하며, 모호하고 추상적인 목표 설정이 조직 성과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도런은 목표를 실행 가능한 언어로 변환하기 위한 다섯 요소(Specific, Measurable, Achievable, Relevant, Time-bound)를 제안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SMART 법칙의 시작이었다. 이후 여러 학자와 실무자들은 이 틀을 발전시켜 두 가지 요소를 추가했고, 그 결과 SMARTER라는 확장형이 탄생했다.
SMARTER는 다음 일곱 가지 요소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Specific(구체적이어야 한다): 목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해야 한다. Measurable(측정 가능해야 한다): 진행 상황과 성과는 수치나 지표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Achievable(달성 가능해야 한다): 자원과 역량을 고려했을 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도전적인 수준의 목표여야 한다. Relevant(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목표는 개인·부서·조직의 전략과 일치해야 한다. Time-bound(기한이 명확해야 한다): 언제까지 달성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한이 필요하다. Evaluated(평가되어야 한다): 설정된 목표는 주기적으로 검토·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Recognized(인정·공인되어야 한다): 목표 달성과 과정은 내부와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치유농업에서 SMARTER가 특히 유효한 이유는, 이 분야의 성과가 늘 ‘두 갈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는 참가자의 건강·정서 변화라는 임상적·심리학적 효과, 다른 하나는 농장과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경영적 성과다. SMART가 이 두 축을 지표와 기한으로 묶어 실행을 가능케 한다면, SMARTER의 E는 실행을 주기적 평가로 닻내리고, R은 외부의 공적 인정(보건소·의료·복지기관의 연계, 지자체의 인증, 전문직 자문위원회의 평가 등)을 통해 신뢰의 외연을 확장한다. 결국 E와 R은 ‘효과의 증거화’와 ‘가치의 사회화’라는 두 개의 사다리를 세우는 작업이다.
평가(E)는 단순한 사후 보고서가 아니다. 치유 프로그램 설계 단계에서부터 무엇을 언제 어떤 도구로 잴 것인지가 합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편백숲 호흡·원예 결합 코스를 운영한다면, 1회기와 마지막 회기에 스트레스 지수, 간이 우울·불안 척도를 고정 측정하고, 매 회기 종료 직후 간단한 체감 설문을 표준화해야 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곧바로 다음 기수의 콘텐츠 조정과 안전·위생 프로토콜 개선으로 환류되며, 분기·반기 단위의 성과 리뷰에서 재검증된다. SMART의 ‘측정가능’이 숫자를 마련하는 단계라면, SMARTER의 ‘평가’는 그 숫자를 통해 학습하고 교정하는 순환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인정/재인식(R)은 외부 신뢰를 얻는 과정이다. 치유농업은 공공성과 전문성이 맞닿아 있어, 현장의 호평만으로는 다음 재원을 설득하기 어렵다. 지역 병·의원과의 공동 세미나, 보건소 수료증 제도, 사회복지기관의 의뢰 프로토콜, 대학·연구기관과의 성과보고서 공동 발간 같은 장치들은 프로그램의 신뢰를 ‘내부 만족’에서 ‘대외 인정’으로 끌어올린다. 이는 단순히 참여자 모집과 매출 증대만을 위한 홍보 수단이 아니라, 지역 돌봄 체계 속에 치유농장을 정식 편입시키는 통로이기도 하다. R이 확보될 때, 목표 문장은 공문서와 파트너 계약서 위에서 힘을 얻고, 다음 회계연도의 예산과 정책 연계를 견인한다.
SMARTER의 관점에서 보면, 목표 문장 자체도 달라진다.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라는 말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반면 “올해 4–6월 2기 운영으로 누적 80명 참여, 스트레스 지표 15% 개선, 순 추천 지수(Net Promoter Score, NPS) + 40 달성; 분기 자문회의 1회로 평가 보고서를 확정하고, 보건소 수료증 제도를 통해 공식 인정 획득”이라고 적는 순간, 목표는 일정표·측정표·보고서·협약서로 구체화되어 모두의 행동을 촉발한다. 이처럼 SMARTER는 행동을 낳는 문장법이며, 문장을 뒷받침하는 절차의 설계도다.
물론 비판과 경계도 필요하다. 지나치게 수치에 치우치면 치유의 관계성과 서사, 참가자의 의미 있는 변화가 숫자에 가려질 수 있다. 따라서 평가 설계에는 정량과 정성(센서 데이터와 내러티브 기록)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또한 ‘인정’이 형식적 도장 찍기에 그치지 않도록, 자문위원회가 실제로 개선 권고를 내고 다음 분기에 반영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메타평가가 병행되어야 한다. SMARTER는 도구이지 구속복이 아니다. 계절과 작물, 사람의 변주를 품을 수 있도록 유연한 수정 조항을 두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SMARTER가 치유농업에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선의의 체계화”다.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달성 가능하고 전략에 정렬된 목표를 기한 안에 추진하되, 그 전 과정을 평가로 엮고, 사회적 인정을 통해 공신력을 얹는다. 그때 치유는 단발 체험에서 지역 돌봄 인프라로, 프로그램은 행사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승격된다. 다음 분기의 치유농업을 기다리며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목표를 표어로 두지 말고, 평가와 인정이 내장된 한 문장으로 다시 쓰는 것. SMARTER는 그 문장을 현실로 당겨오는 가장 간결한 줄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치유농업 및 치유농장의 코호트 마케팅 전략.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