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지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구례군 지리산역사문화관에서는 ‘2025 탄소중립 흙 살리기 박람회’가 열렸다. 올해의 주제는 “흙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였다. 40여 개 업체가 참여해 흙의 생태적 가치를 공유하고, 탄소 저장과 기후 조절 기능을 재조명했다.
행사와 관련된 언론 보도는 대체로 흙 속 미생물과 유기물이 탄소를 붙잡아 대기 방출을 줄이는 ‘기후위기 대응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생물이 항상 탄소를 제거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대기로 방출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흙을 관리하느냐다.
흙을 들여다보면 작은 입자와 틈새,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로 가득 차 있다. 세균, 곰팡이, 방선균, 원생동물 등 다양한 미생물은 유기물의 분해자 역할을 맡는다. 식물 뿌리의 잔해, 낙엽, 동물의 배설물과 사체가 흙 속으로 들어오면 미생물은 이를 잘게 쪼개고 화학적으로 분해한다.
이 과정에서 탄소는 여러 경로로 이동한다. 일부는 이산화탄소(CO₂)나 메탄(CH₄) 같은 기체로 바뀌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반면 다른 일부는 토양 유기물(Soil Organic Matter)로 안정화되어 오랫동안 흙 속에 저장된다. 특히 미생물은 분해 산물을 ‘부식(humus)’이나 안정화된 유기탄소로 전환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대기와 격리시킨다.
또한 미생물은 광물이나 토양 입자와 결합된 형태로 유기물을 고정하여 ‘토양 탄소 저장고’를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토양에 저장된 탄소량은 대기 중 탄소를 능가하며, 미생물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보이지 않는 동맹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생물은 동시에 탄소의 ‘발생원’이기도 하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호흡을 통해 이산화탄소(CO₂)를 방출한다. 특히 산소가 부족한 습지나 논에서는 메탄 생성균이 활발히 작동해 이산CO₂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CH₄)를 배출한다.
여기에 인간 활동이 더해지면 문제가 커진다. 과도한 화학비료 사용이나 잦은 경운으로 토양이 교란되면 안정적으로 존재하던 탄소가 빠르게 분해된다. 이로 인해 미생물이 단기간에 대량의 탄소를 대기 중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농업과 토지 이용 방식이 미생물의 기능을 탄소 고정자로 만들 수도, 배출자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미생물은 탄소의 ‘저장고 수호자’이자 동시에 ‘배출원’이다. 이 양면성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토양 관리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유기물을 적절히 공급하면서 화학비료 사용을 줄이고 경운을 최소화하면 미생물의 탄소 고정 능력이 강화된다. 반대로 무분별한 개발과 비료 남용은 미생물을 탄소 배출의 주체로 만든다.
미생물의 역할은 흥미롭다. 흔히 ‘분해’라고 하면 단순히 사라지는 과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탄소의 형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미생물이 없다면 낙엽이나 동물 사체는 썩지 못하고 쌓이기만 했을 것이다. 미생물 덕분에 유기물은 분해되어 탄소 순환에 기여하고, 일정 부분은 토양에 남아 ‘탄소 저장고’로 기능한다.
토양은 지구에서 가장 큰 탄소 저장소 중 하나다. 대기와 바다에 견줄 만큼 막대한 탄소가 흙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무분별한 활동은 이 균형을 흔들고 있다. 경운, 화학비료 과다 사용, 산림 파괴는 토양 유기물을 감소시켜 대기 중 탄소를 늘린다. 반대로 토양을 올바르게 관리하면 흙은 다시금 안전한 탄소 창고가 될 수 있다.
흙과 미생물, 그리고 탄소. 이 보이지 않는 순환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 나가는 새로운 길이다. 흙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2. 미래를 바꾸는 탄소농업: 지속가능한 환경 재생형 농업. 중앙생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