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꽃은 메시지를 담고, 마음을 위로하며, 사람들을 자연의 리듬과 이어주는 등 단순한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메리카에서 화훼장식이 치유적 실천으로 자리잡은 역사는 원주민 전통, 식민지 시대의 문화 교류, 그리고 현대 치료 운동과 깊이 얽혀 있다. 이 역사를 살펴보면, 꽃이 단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힘으로도 소중히 여겨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인이 오기 전,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꽃을 의례와 약용으로 사용했다. 메소아메리카의 아즈텍인들은 금잔화, 달리아, 목련을 치유 의식에 활용하며, 신전에 꽃을 바치거나 꽃잎을 빻아 약으로 쓰기도 했다.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인 체로키, 나바호, 라코타 족 등은 특정 꽃을 정화와 보호의 상징으로 보았다. 화훼장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영적 균형을 불러오고 불안을 줄이며 회복을 돕는 의도적 배열이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의 정착민이 도래하면서 유럽의 화훼장식 양식이 원주민 전통과 어우러졌다. 식민지 멕시코에서는 성모 마리아 축제를 위해 화려한 꽃 아치와 제단 장식이 등장했는데, 이는 가톨릭 신심과 원주민 상징이 결합된 사례였다. 카리브 지역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과 현지 공동체가 히비스커스, 부겐빌레아, 프랑지파니 같은 꽃을 치유 차와 의례적 장식에 활용하며, 꽃의 심미성과 건강을 연결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18~19세기에 리우데자네이루, 아바나, 필라델피아 같은 도시의 식물원은 이국적인 꽃을 널리 보급했다. 의사와 약초학자들은 꽃이 감정과 생리적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하면서 장식적 꽃꽂이와 치료적 사용을 연결했다.
19세기에는 북미와 남미에서도 유럽의 ‘꽃말’영향을 받아 꽃 상징이 크게 유행했다. 꽃다발과 꽃꽂이는 단순한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병자나 슬픔을 겪는 이들을 위로하는 제스처로 주고받았다. 미국의 병원과 요양원은 삭막한 공간을 밝히기 위해 화훼장식을 도입했으며, 이는 쾌적한 환경이 회복을 돕는다는 인식의 확산과도 맞물려 있었다.
동시에, 이민자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치유 꽃 문화를 가져왔다. 중국·일본 이민자들은 국화와 동백의 상징을 전했고, 지중해 지역 출신 이민자들은 라벤더, 로즈마리, 감귤꽃을 우울과 피로 해소에 좋은 약용 식물로 강조했다.
20세기 초에는 원예 동호회, 플로리스트 협회, 예술학교를 중심으로 꽃꽂이가 전문화되었다. 그러나 심미적 세련과 더불어 의학계는 점차 꽃의 치료적 효과를 인정했다. 1920년대 이후 연구들은 병실에 꽃이 있는 환자들이 통증과 불안이 줄었다고 보고했다. 미국의 재향군인병원들은 재활 과정에 원예치료를 도입하며 화훼장식 세션을 운영하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콜롬비아 메데인의 꽃 축제(Feria de las Flores) 같은 지역 행사에서 대규모 꽃장식이 공동체의 치유와 기쁨의 장으로 기능했다. 이는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도 꽃이 희망을 전하는 힘을 보여준다.
오늘날 아메리카 전역에서 치유 화훼장식은 원예치료, 플로럴 테라피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요양원, 암 환우 센터, 학교 등에서 꽃꽂이 워크숍은 스트레스 완화, 창의성 증진, 사회적 유대 강화의 수단이 된다. 미국에서는 미국원예치료협회(AHTA) 같은 기관이 꽃꽂이를 재활 도구로 보급하고 있으며, 브라질과 멕시코 등에서도 꽃꽂이 프로그램이 지역 보건 활동에 통합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오늘날 이러한 실천들이 다시 원주민의 뿌리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이다. 꽃의 치유력은 단지 시각적 조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영적 울림에서 나온다는 점을 재발견하고 있다. 병원 병동, 치유 정원, 전통 축제 어디서든 꽃의 배열은 여전히 우리에게 “아름다움 자체가 곧 약이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참고문헌
송미진. 2025. 일본에서 치유 화훼장식의 역사.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09-10).
송미진. 2025. 치유농업 측면에서 화훼장식의 매력,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