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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농업의 3가지 유형과 전남 농업의 방향성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09-16 08: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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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오는 10월 23일부터 29일까지 전남농업기술원 일대에서 열리는 2025 국제농업박람회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다. 이 행사는 농산물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농업의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준비하는 창구라 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기업과 연구자, 지역과 세계가 함께 모여 기술을 공유하고 신뢰를 쌓으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종합 무대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박람회는 농업의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장이다. 따라서 세계 농업의 유형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전남 농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한 뒤 박람회에 참여한다면, 단순한 구경을 넘어 보다 깊은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세계 농업은 각국의 자연조건과 사회적 맥락, 시장의 수요에 맞춰 발전해 왔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개발도상국형 농업이다. 쌀, 밀, 옥수수와 같은 곡물 증산을 통해 국민에게 기초 칼로리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관개 시설과 비료, 방제의 균형이 생산성을 좌우하며, 식량안보가 곧 국가 발전의 초석이 된다.

 

둘째는 선진국형 농업이다. 넓은 농지와 기계화를 기반으로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GPS 트랙터, 드론, 데이터 기반의 경영이 표준화되어 있으며, 수출전략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셋째는 성숙형 농업이다. 한정된 토지에서도 고부가가치 품목을 길러내고, 가공과 관광을 결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치즈, 와인, 화훼, 프리미엄 채소 등이 대표적이며, ICT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이 세 가지 유형을 거울삼아 전남 농업을 살펴보면 방향이 분명해진다. 전남은 논과 과수, 원예에 더해 김, 미역, 전복 같은 해양자원이 풍부하다. 또한 보성 차, 광양 매실, 나주 배, 해남 고구마와 배추, 영암 무화과, 신안 시금치 등 다양한 브랜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식 대규모 농업을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다. 대신 전남의 강점을 살린 성숙형 농업 전략을 지역 실정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품목의 고부가가치화가 중요하다. 논은 저탄소 재배와 기능성 쌀로 차별화하고, 과채류는 당도와 식감 등 세부 품질을 데이터로 관리해 프리미엄 등급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농산물은 산지 HACCP와 건조·발효 공정을 결합해 간편하고 건강하며 이야기를 담은 가공식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전남의 지리와 문화, 기후를 품은 원재료 이야기가 곧 가격 프리미엄의 근거가 된다.

 

둘째는 디지털 전환의 현지화다. 대규모 자동화가 아니라 소농과 중소농에 적합한 경량화된 디지털 기술이 필요하다. 관수와 양액, 저온유통 센서를 표준화하고, 드론 예찰과 수확예측 시스템을 농협이나 지역 유통 법인과 연결한다면 개별 농가의 데이터가 집단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는 6차 산업과 관광, 치유농업의 결합이다. 차밭과 염전, 과수원과 해안 트레일을 잇는 체험 루트를 만들고,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발효·로컬푸드 프로그램을 상설화해야 한다. 여기에 간단한 웰니스 지표를 접목하면 농업 체험이 단순한 즐길 거리를 넘어 건강과 휴양의 가치로 확장될 수 있다.

 

넷째는 인력 재생이다. 청년농과 여성농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력을 유입하려면 임대농지, 공유장비, 공동브랜딩을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 계약재배와 정기구독, 산지 직거래 같은 새로운 유통 구조가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 준다면 젊은 세대는 농촌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다섯째는 수출 생활권의 확대다. 항만과 공항, 냉장 물류망을 연계해 신선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동시에 수출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고, 동남아와 홍콩, 대만 등 가까운 시장을 겨냥한 소량·다품목 수출전략을 세워야 한다. 바이어가 요구하는 품질과 규격, 이야기를 데이터로 즉시 제공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마지막은 기후위기 적응이다. 고온과 집중호우, 염해에 대응할 수 있는 품종 개발을 확대하고, 과수에는 차광망과 미세 관수, 방상팬 등 기후 제어 장비를 기본화해야 한다. 논과 습지의 탄소 흡수와 생물다양성 가치를 크레딧으로 전환한다면 새로운 수익원도 확보할 수 있다.

 

전남은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세계 농업 세 가지 유형의 장점을 동시에 흡수할 수 있는 드문 자산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전남 농업의 미래는 단순히 “더 크게”가 아니라, “더 똑똑하게, 더 맛있게, 더 이야기답게”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데이터가 품질을 증명하고, 브랜드가 가격을 지켜내며, 관광과 치유가 체류를 늘릴 때 전남 농업은 성숙형 농업의 한국적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기후변화 농업, 스마트팜 속 망고보다 노지의 감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 칼럼(2025.9.12.).

허북구. 2025. 전남 농업, 기계화로 인건비 위기 넘어서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 칼럼(2025.9.11.).

허북구. 2025. 전남 농업 정책, 산업 생태계로 확장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 칼럼(20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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