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농업은 밭과 논에서 시작되지만, 그 가치와 규모는 밭을 넘어선 곳에서 완성된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한 농산물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긴 여정이 이어진다. 종묘와 비료, 농자재를 공급하는 산업에서부터 가공과 유통, 그리고 소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결 고리가 하나의 사슬처럼 맞물려 있다. 이를 흔히 ‘밸류체인(value chain)’이라고 부르는데, 농업의 진정한 힘은 이 사슬이 얼마나 튼튼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라남도의 농업 정책을 돌아보면, 농민의 땀과 수확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생산은 농업의 본질이지만, 그 이면에는 종묘와 비료, 자재를 공급하는 후방산업이라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다. 농민이 아무리 좋은 작물을 길러도, 필요한 자재와 재료를 외부에서 사다 쓴다면 수익은 줄고 지역 내 산업 규모도 커지기 어렵다. 결국 농민은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순수익은 기대만큼 남지 않고, 지역 경제에서 농업의 파급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만약 후방산업을 지역 안에서 육성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전라남도는 농도라고 할만큼 국내에서 차지는 농업비중이 높고 그에 따라 후방산업의 주요 소비지이다. 그러므로 전남도내 기업이 만든 종묘와 자재를 농민들이 우선적으로 구매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가격을 조정해 저렴하게 공급한다면, 농민의 부담은 줄고 기업은 성장 동력을 얻는다.
유통 거리를 단축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면, 생산성 또한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맞물리면 농업은 단순히 ‘먹거리 생산’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로 확장된다.
농업의 선순환 모델은 크게 세 갈래로 구상할 수 있다. 첫째는 후방산업 기반 강화다. 종묘·비료·농기자재 기업을 도내에서 키우고, 연구개발과 창업을 뒷받침하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지역 내 자원 순환 확대다. 농민이 수확한 작물이 지역 가공업체로 넘어가 부가가치를 더하고, 다시 지역의 식당과 시장으로 공급된다면, 돈의 흐름은 지역 안에서 더욱 촘촘해질 것이다.
셋째는 정책적 지원 체계 확립이다. 전남도내 업체 우선 구매 제도, 후방산업 연구개발 보조금, 유통거점 설치와 같은 실질적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제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전남 농업은 생산과 판로 확대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농민의 삶을 지탱하기에 부족하다.
후방산업이라는 농업의 숨은 축을 제대로 세우지 않는다면, 농민의 땀방울은 늘 외부로 흘러나가고 말 것이다. 이제는 농업 정책부터 시선을 전환해야 한다. 농민이 땀 흘려 거둔 수확이 지역 내 산업과 다시 맞물려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선순환 농업의 핵심이다.
밸류체인은 단순한 경제학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전남 농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이자, 지역 경제를 지탱할 보이지 않는 근육이다. 전남의 농업 정책이 후방산업 육성이라는 새로운 축을 세울 때, 농민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지역 경제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농업 정책에서부터 전남 농업이 선순환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4. 나주시, 스마트팜 후방산업 육성 최적지이다. 전남인터넷신문 칼럼(2022.6.13.)
허북구. 2022. 전남 농업, 후방산업 육성해 시너지효과 내야. 전남인터넷신문 킬럼(202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