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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고령자의 고독 구조와 치유농업의 대안적 의미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5-09-05 08: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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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농촌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가 촘촘히 엮여 있어 고령자들에게 삶의 안정감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의 가속화, 가족 구조의 변화, 인구 고령화는 이러한 기반을 크게 흔들고 있다. 특히 농촌 고령자들이 경험하는 고독은 단순히 독거 여부나 연령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고독은 개인의 신체적 조건, 가족과의 생활 의식 차이, 농업 경험의 의미 변화,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의 역할 상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나타난다. 치유농업을 고령자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고독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면밀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가족관계 속에서의 고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령자들은 오랫동안 농업을 통해 가족을 지탱해 왔지만, 신체 기능의 저하와 생활 양식의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이전처럼 기여하기 어려워진다. “더 이상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라는 인식은 무용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거리 두기로 나타난다. 젊은 세대와의 생활 의식 차이는 고령자 스스로를 가족 내에서 점차 주변화된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이렇게 가족 속에서도 고독이 발생하며, 이는 물리적 고립이 아닌 내적 고독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둘째, 독거 고령자의 고독은 이중적인 양상을 지닌다. 흔히 독거를 곧 고독으로 단정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부 고령자는 가족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심리적 편안함과 자율성을 누린다.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내 생활을 지킬 수 있다”라는 자율성은 독거를 긍정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요소다.

 

반대로 배우자를 잃거나 사회적 접촉이 단절된 경우, 하루 종일 대화 한마디 없는 생활 속에서 깊은 고립감을 체험한다. 특히 남성 고령자들은 가사 노동이나 사회적 네트워크에 익숙하지 않아 이러한 고립감을 더 크게 느낀다. 따라서 독거 여부만으로 고독을 설명할 수 없으며, 고독은 질과 정도의 차원에서 세밀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셋째, 공동체 활동 속에서 경험하는 고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촌 고령자들에게 마을 모임이나 노인회 활동은 오랫동안 삶의 활력소이자 사회적 연대의 장이었다. 그러나 신체적 제약으로 참여하지 못하거나, 모임 속에서 젊은 층과의 차이를 절감할 때 오히려 자신의 ‘늙음’을 인식하게 된다. 농업 경험은 여전히 삶의 자부심이자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만, 현실적으로 농업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은 소속감 상실을 심화시킨다.

 

결국 공동체조차 고독을 완화하기보다 ‘나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감정을 강화시키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하면, 농촌 고령자의 고독은 단순히 생활 형태나 가족 구조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 내 생활 의식의 불일치,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한 역할 상실, 공동체 속에서의 소외, 젊은 세대에 대한 질투가 아닌 조심스러운 거리 두기(遠慮) 등이 서로 맞물리며 형성된다.

 

이때 고독은 결국 인간관계와 생활 공간의 축소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여기서 생활 공간은 단순히 집이나 마을 같은 물리적 장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즐기던 취미 활동을 포기하거나 모임에 나가지 못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잃어버리는 상황까지 포함한 정신적‧사회적 영역의 협소화를 의미한다.

 

이처럼 농촌 고령자의 고독은 단순한 정서적 문제를 넘어 삶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과제이다. 그러나 현재 제도적 지원은 주로 신체적 자립이 어려운 소수의 요보호 고령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건강하지만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다수의 고령자들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치유농업은 바로 이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대안적 접근으로 주목된다. 농작업이나 원예활동, 자연 속에서의 체험은 고령자들에게 “나는 아직 할 수 있다”라는 자기 효능감을 제공하며, 무용감을 줄여준다. 또한 공동의 활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망을 재구성하고, 신체적 활동은 생리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감을 동시에 높인다.

 

농촌 고령자의 고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현상이다. 치유농업이 농촌 현장에 적절히 적용된다면, 고령자들의 고독을 완화하고 삶의 활력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지역사회 차원에서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정착된다면, 고령자들의 정신적·정서적 삶을 지지하는 새로운 사회적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고독은 피할 수 없는 노화의 그림자가 아니라, 적절한 돌봄과 활동을 통해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과제이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농촌 고령자의 고독과 복지 그리고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9.1.)

최연우. 2025. 농촌 고령자의 고독과 일중독, 치유농업이 해법이다.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8.28.)

庄司知恵子. 2005. 農村高齢者の日常生活にみる孤独のメカニズム: 秋田県由利郡東由利町蔵地区Y集 落の事例を通して. 現代社会学研究 18:6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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