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최근 전남 순천시가 발표한 여성 농업인을 위한 ‘건강·문화·돌봄 3종 패키지’ 정책은 그 방향성과 의도 면에서 매우 환영할 만하다. 특수건강검진비 전액 지원, 문화 여가 바우처 확대, 출산기 농가도우미 상시 운영 등은 여성 농업인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이라는 정책 기조는 복지의 형평성과 촘촘함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전남 여성 농업인’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순천시, 여성농업인 삶의 질 높이는 4종 세트”, “구례군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지원사업 추진”, “함평 여성농업인, 농업 혁신 주도” 등 여성 대상 정책 보도는 넘쳐나는 반면, ‘전남 남성 농업인’이라는 키워드로는 관련 기사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남성 농업인은 존재하나 정책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순천시가 여성 농업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행복바우처는 지원 연령을 75세에서 80세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는 고령 여성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좋은 취지의 사업이다. 그러나 그 제목이 “여성 농업인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80세 남성 농업인은 아무리 문화생활이 단절되고, 외롭게 살아간다 해도 이 바우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책 대상에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는 것이다. 또한 “여성 농업인 삶의 질 높이는 4종 세트”라는 기사 제목만 보더라도, 남성 농업인의 삶의 질은 고려 대상이 아닌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물론 정책 기획 단계에서 여성 농업인의 열악한 현실, 농촌 사회의 성차별 구조, 돌봄과 가사노동의 여성 편중 등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전남여성가족재단이 펴낸 ‘전남 청년농업인 실태 및 정책 수요 조사’에서도 농업 내 성역할 분담과 성평등 인식에서 여성의 박탈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곧, 남성 농업인에 대한 지원을 소외시켜도 된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특히 농촌 고령화가 심각한 전남의 현실에서, 홀로 사는 고령 남성 농업인의 고독과 복지 사각지대 문제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전남의 여러 농촌 마을을 찾아가 보면,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은 주로 여성 어르신들의 공간처럼 기능하고 있다. 공동 식사, 담소, 건강관리 프로그램 등도 대체로 여성 중심으로 운영된다. 실제로 많은 마을에서는 남성 어르신들이 이 공간에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거나 소외감을 느낀다. 어떤 남성 어르신들은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일을 하면서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여성 고령자가 많아서 생긴 우연한 결과로 보기에는 어렵고, 정책의 방향성과도 맞물려 있다. 여성 농업인 대상 공동급식, 문화지원, 건강검진 등은 많은 사례에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며, 이는 정책이 ‘여성의 영역’과 ‘남성의 영역’을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처럼 작용할 우려가 있다.
그 결과, 고령의 남성 농업인은 사회적 교류에서 소외되고, 문화·건강·돌봄 정책에서도 배제되는 이중의 단절을 겪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공론화는 매우 부족하며, 관련 기사나 정책 담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성평등 정책이라 하면,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성평등은 양성 모두의 권익을 동등하게 보장하고, 필요한 경우엔 남성도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농업인의 건강과 문화·돌봄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령의 남성 농업인이 사회적 단절 속에서 방치되고 있는 현실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남성 농업인은 ‘당연히 강인하고, 혼자서도 잘 버틴다’라는 전통적 이미지에 갇혀 지원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는 이제 ‘여성만이 아닌, 모두의 농촌복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성별이 아닌, 삶의 조건과 현실에 따른 지원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혼자 남은 고령 남성 농업인이 마을 회관에도 쉽게 나가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전남의 농촌이 지속 가능하려면, 여성만이 아닌 남성도 행복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진정한 성평등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농촌 사회를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4. 농촌 노인의 일 중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6-21).
허북구. 2024. 농업의 재미 소실과 농촌 위기.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