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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농업기술원과 전남도농업박물관, 동행 시너지효과 내야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05-30 08: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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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오는 5월 31일, 전남도농업박물관은 쌀 문화관 일원에서 ‘2025 단오 민속 체험행사’를 개최한다. 단오의 유래와 민속 교육을 시작으로, 수리취떡 시식, 창포 비누 만들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수리취떡 시식 프로그램이다. 수리취떡은 전통적으로 전남 지역에서 먹던 떡이었는지를 두고는 논란이 많다. 문헌상으로 수리취떡은 등장하지 않으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 조사에서도 이를 먹어 봤다는 응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남에 수리취떡 문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남 장흥 지방에서 불렸던 ‘떡 타령’에는 수리취떡에 해당하는 표현이 존재한다. “산중 사람은 번추떡”이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번추’는 수리취를 가리키는 전남 방언이다. 과거 전남에서는 수리취를 ‘암번추’, ‘암분대’, ‘암분추’ 등으로 불렀으며, 절굿대는 ‘숫번추’, ‘숫분추’, ‘숫분대’라 칭해 구분했다. 이러한 식물 명칭은 필자가 전남 각지 노인당을 직접 방문해서 찾아낸 결과이다.

 

이러한 식물들을 이용한 떡문화는 현재 일부 지역에서 복원되어 살아 숨 쉬고 있다. 절굿대를 활용한 떡은 나주에서 복원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수리취를 암번추로 불렀던 화순 지역의 떡 전문가는 대를 이어 떡 제조법을 계승하고 있다. 지금도 그의 자손이 광주에서 떡집을 운영하며 수리취떡을 만들고 있다. 절굿대떡은 슬로푸드국제협회가 인정한 맛의 방주(Ark of Taste)에도 등재되어 세계적 전통식품의 반열에 올라섰다.

 

전남에는 이처럼 번추떡을 포함한 수많은 전통 농업유산이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농업에도 활용 가능한 자산이다. 그러나 고령자의 사망 증가와 함께 이러한 유산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문화적 유산으로서 보존되어야 할 이들 자원은 오히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더욱 높은 가치를 가진다. 전통과 스토리를 품은 자원은 글로벌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최근 농업의 역할은 단순한 먹거리 생산을 넘어섰다. 소비자들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든 먹거리인가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 지역성과 문화성, 그리고 환경적 윤리까지 반영된 ‘의미 소비’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첨단화된 스마트팜 시대일수록 이러한 ‘사람의 손맛’과 ‘이야기 있는 먹거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자동화 시스템 속에서 자란 농작물일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며 불렀던 민요 한 자락이 더해질 때 농산물은 상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남의 농업도 이제는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 그 스토리의 핵심은 지역 농업의 역사성과 문화성이다. 여기서 전남농업기술원과 전남도농업박물관의 협력이 필요하다. 농업기술원은 기술개발과 재배보급의 주체이고, 농업박물관은 전남 농업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두 기관이 단순한 병존이 아니라 유기적 파트너십을 형성할 때 전남농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예컨대, 전남도농업박물관은 ‘수리취떡 시식’ 수준에서 그치지 말고, 떡 타령에서 유래한 번추떡의 방언, 재료, 제조법, 전통 식물의 식별 및 분포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아카이빙할 필요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전남농업기술원은 관련 식물의 유전자원 확보, 재배기술 개발, 상품화 가능성 검토, 기능성 성분 분석 등 과학적 접근을 통해 현대 농업으로 연결해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통떡의 복원 및 현대화, 기능성 신작물의 개발, 농촌공동체의 창업 유도 등 다양한 효과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박물관은 과거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기관일 뿐 아니라, 미래 농업의 자산을 정리하고 제공하는 ‘문화적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기술원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산업화하는 역할을 분담하며, 두 기관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은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한 번추떡, 절굿대떡은 필자 개인의 노력에 의해 복원되었고, 장인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이 흐름이 개인의 헌신에 머문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행정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이 바로 농업기술원과 농업박물관의 공동 작업이며, 이는 전남 농업의 경쟁력을 ‘기술’과 ‘문화’ 두 축으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전남의 미래 농업은 더 이상 땅과 노동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담긴 농산물, 전통의 향기가 배인 식문화, 그 모든 것을 융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은 발전하되, 문화는 보존되어야 한다. 이제는 박물관과 기술원이 함께 걸어가야 할 시점이다. 전남 농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그렇게 완성될 것이므로 두 기관이 동행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1. 전남 농특산물의 상품화 제안, 허북구 농업칼럼. 세오와 이재.

허북구. 2021. 전남 농특산 품목의 경쟁력 강화 방안, 허북구 농업칼럼. 세오와 이재

허북구. 2015. 근대 나주의 분추떡 문화와 절굿대. 세오와 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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