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지난 5월 26일, 전라남도종자관리소(소장 김재천)는 나주 반남면 들녘에서 풍년농사 기원제와 첫 모내기 행사를 개최했다. 전통 제례 형식을 갖춘 이번 기원제는 오랜 집례 경험이 있는 이순문 씨의 기원문 낭독으로 시작되었고, 지역 주민들과 관계자들이 한 해의 풍년과 안전한 영농을 함께 기원하며 의미를 더했다.
이러한 풍년제는 단순히 한 해 농사의 안녕을 비는 의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농업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전통 농업은 도공이 흙을 빚듯이, 정원사가 나무를 다듬듯이 농부의 손끝에서 정성과 세심함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된 스마트농업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고, 농업도 산업의 하나로서 자동화·표준화를 거쳐 점점 ‘공산품’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농산물도 기계로 생산될 것이라는 소비자 의식 전환과 농산물에 감성이 결여된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기계화된 농장에서 대량 생산된 농산물은 감성, 장인의 정체성, 농부의 수고로움, 지역의 특색이 지워진다. 가격경쟁력이 핵심이 된 시장에서는 규모화가 가능하고 생산비가 저렴한 외국의 대규모 기업농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 반면, 전남처럼 소농 중심의 지역에서는 비록 스마트팜을 도입하더라도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높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전남 농업이 살 길은 ‘차별화’와 ‘감성 자산의 회복’이다. 단순히 품질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농작물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감성과 전통을 덧입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현대 소비자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경험’과 ‘가치’를 구매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풍년농사 기원제와 같은 전통 농업 문화 재해석이 필요하다. 풍년제 같은 것을 단순한 전통행사로 치부하기보다, 전남 농업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입힌 감성 콘텐츠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원제 또는 모내기 때에 남도 들노래나 농악 공연, 전통 판소리들 들려 주거나, 지역 특산물 시식 행사, 어린이와 가족이 참여하는 손모내기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하면 지역의 전통과 현대 기술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체험형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전통행사와 지역 농산물 간의 직접적인 연계와 충분한 홍보에 의한 소비자 인식도 중요하다. 예컨대 풍년제를 통해 모내기된 논에서 자란 쌀은 ‘기원제를 통해 태어난 쌀’이라는 이야기로 소비자에게 소개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쌀이 아니라, 전통문화와 지역 정서가 깃든 감성상품으로 변모하게 된다.
더불어, 이러한 문화적 감성 자산은 관광자원화에도 가능성을 지닌다. 농업과 문화가 결합된 콘텐츠는 체류형 농촌 관광, 교육 여행, 전통문화 체험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으며, 이는 전남 농촌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가져다준다.
전라남도의 농업 관련 기관은 이제 풍년농사 기원제 같은 농업문화 행사를 단순히 ‘과거의 행사’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스마트농업 시대에도 유효한 감성적 자산이자 문화 콘텐츠로 재창조해야 한다. 과학과 전통, 자동화와 감성이 공존하는 전남 농업의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세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전남만의 농업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기술은 생산의 효율을 높이고, 전통은 제품의 가치를 더하게 해야한다. 전남 농업이 이 두 축을 균형 있게 활용한다면, 그 어떤 산업보다도 지속 가능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바로 풍년농사 기원제와 같은 농업문화와 민속이 있다. 이 고유의 전통행사가 다시금 우리의 들녘을 풍요롭게 하고, 농업을 다시 ‘이야기’와 ‘정성’이 깃든 삶의 현장으로 되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