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오월은 완두콩의 계절이다. 텃밭이든 시장이든, 완두콩이 연두빛 꼬투리 속에서 통통하게 여물어가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콩 중에서도 완두콩만큼 친숙한 작물은 드물다. 작은 공간만 있어도 손쉽게 재배할 수 있고, 수확도 빠르며 수확량도 풍성하다.
꼬투리째 구입한 완두콩은 삶아 먹어도 좋고, 밥에 넣어도 좋고, 전으로 부쳐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완두콩을 까는 ‘행위’ 자체가 주는 의미와 시간이다.
완두콩은 특별한 조리기술 없이도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재료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꼬투리를 까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자연과 식탁 사이에 놓인 생명의 연결고리를 손끝으로 느끼게 된다. 연두빛 콩알이 톡톡 튀어나올 때마다 어린 손들은 생명의 경이로움에 눈을 반짝이고, 어른들은 그 장면을 통해 무심코 흘려보낸 자연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드문 시대에, 완두콩은 작은 꼬투리 하나로 세대를 연결한다.
완두콩을 함께 까는 것은 단순한 준비작업을 넘어선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배움이고, 자신이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했다는 기쁨이자 자존감이다. 부모에게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며, 말없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매개다. 콩을 까는 반복적이고 느린 동작은 명상처럼 집중을 유도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심신을 진정시키는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 시기의 완두콩은 꼬투리째 구입해 손수 까야 제맛이다. 일년 내내 냉동 완두콩은 구입할 수 있지만, 꼬투리 속 콩을 꺼내는 그 소리와 감촉, 그 과정에서의 대화와 침묵은 오직 지금 이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완두콩을 까고 나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해 먹을까?”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때 좋은 선택 중 하나가 바로 완두콩전이다. 완두콩전은 까는 수고에 대한 작은 보답이자, 가족을 위한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 된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르나 필자의 레시피에서 재료는 삶아서 으깬 완두콩 1컵, 잘게 썬 양파 1/4개, 부침가루 3숟가락, 달걀 1개, 소금 약간, 식용유만 있으면 된다.
조리법도 어렵지 않다. 삶은 완두콩을 으깨고 양파, 부침가루, 달걀을 넣어 섞은 뒤 소금으로 간을 한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한 숟가락씩 떠서 동그랗게 올려 노릇노릇하게 앞뒤로 부쳐낸다. 여기에 간장 1, 식초 1, 고춧가루 약간을 섞은 소스를 곁들이면 고소하고 새콤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완두콩을 까고, 함께 전을 부쳐 먹는 그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서 삶의 리듬을 되찾고 가족의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아이는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먹으며 성취감을 느끼고, 어른은 일상의 작은 평온에 감사하게 된다. 이런 소박한 식탁은 치유 그 자체다. 완두콩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는 지금 자연과 함께 있고, 가족과 연결되어 있으며,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하고 있다”라고...
완두콩은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식재료지만, 직접 꼬투리에서 꺼내어 조리하는 경험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이 봄, 완두콩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말이 필요 없는 소박한 연대, 손끝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따뜻함, 그리고 노릇하게 익은 완두콩전 한 접시가 우리 마음을 여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