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텃밭에 심어 놓은 완두콩이 알알이 여물어가는 계절이다. 담양을 비롯한 전남의 전통시장에도 연둣빛 완두콩이 꼬투리째 망에 담겨 판매되는 풍경이 한창이다. 초여름 문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완두콩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우리네 식탁이 자연과 얼마나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이맘때 푸릇한 완두콩을 삶아 먹거나 밥에 넣어 짓고, 혹은 반찬 한 가지쯤 장만해 보았거나 먹어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완두콩 장조림’은 계절의 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박한 음식이자, 손끝에서 전해지는 조용한 치유의 음식이다.
완두콩은 제철이 짧다. 연한 꼬투리를 따서 하루 이틀 두면 금세 단단해지고, 삶는 시간도 길어져 맛이 달라진다. 가장 맛있을 때는 푸른빛이 선명하고 탱글탱글한 꼬투리를 막 따냈을 때다. 그때 바로 껍질을 벗기고 한 움큼 손바닥에 올려 보면, 초록빛 콩알의 촉감과 색감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미숙한 완두콩이 있다면 꼬투리채 두면 완두콩이 알알이 영글어가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에 경탄하게 되면서 삶에 힘을 얻을 수가 있다. 색채심리학에서도 녹색, 특히 연두빛은 회복과 안정, 균형을 상징한다고 한다. 바로 이 순간부터 요리는 단순한 조리 과정을 넘어선 명상으로 이어진다.
완두콩 장조림은 만들기 간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치유의 힘은 결코 가볍지 않다. 먼저 완두콩 1컵, 메추리알 10~15개, 간장 4큰술, 물 1컵, 설탕 1큰술, 맛술 1큰술, 마늘 5쪽, 참기름 통깨를 준비한다.
완두 장조림을 만드는 방법은 완두콩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궈 색감과 식감을 살린다. 냄비에 간장 네 큰술, 물 한 컵, 설탕 한 큰술, 맛술 한 큰술, 마늘 다섯 쪽을 넣고 중불에서 끓이다가, 데친 완두콩과 메추리알을 함께 넣고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조린다.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과 통깨를 뿌리면, 밥상 위에 올리기만 해도 봄의 정취가 가득한 반찬 한 접시가 완성된다.
이 간단한 한 접시의 장조림은 밥상 위에 올렸을 때부터 묘한 위안을 준다. 간장색 국물 사이로 반짝이는 녹색 콩알이 봄 햇살처럼 상큼하게 빛나고, 한 숟가락 밥 위에 올려 비벼 먹으면 은은한 간장 향과 콩의 고소함, 마늘의 향긋함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산뜻한 봄날이 퍼진다.
그러나 이 장조림의 매력은 단지 맛에만 있지 않다. 꼬투리를 따고, 껍질을 벗기고, 데치고 조리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조용한 리듬이 흐른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시간. 그 자체가 명상이 된다.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간장 향, 익어가는 콩의 고소한 냄새는 오감을 자극하면서도 머릿속 잡념을 정리해준다.
식탁 위에 올린 완두콩 장조림 한 접시는 어쩌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계절의 흐름을 받아들이게 하는 작은 수행이자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누군가를 위해 반찬을 만들고, 함께 나누는 그 순간 우리는 자연의 순환 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완두콩 한 알 한 알은 밭에서 자라던 생명체이면서 지금 이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연두빛 보약’이자 ‘치유의 시간’을 제공해 준다.
지금 완두콩은 제철을 맞이 했다. 흔하지만 그래서 더 값지고, 작지만 그래서 더 귀하다. 오늘 하루는 연두빛 완두콩을 손질하며 마음을 달래보고, 그 콩으로 장조림을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식탁에 올려 보거나 밥 한 그릇 천천히 음미해보자. 계절이 주는 선물과 치유의 시간은 늘 단순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