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지난 주말, 전남 지역의 몇몇 시설재배 온실을 둘러보았다. 전남농업기술원의 시설 포장을 비롯해서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 내부에 이산화탄소(CO₂)를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탄소 시비(Carbon Fertilization)’ 시설이 되어 있는 곳들이 있었다.
탄소시비는 밀폐된 환경에서 이산화탄소 증가에 의해 작물의 광합성을 촉진해 작물 생장을 돕는 기술이다. 특히 상추·오이·토마토 같은 작물에서 CO₂ 농도를 600~1000ppm 수준으로 높이면 수확량이 20%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농민들에게는 단기적인 수익을 높이는 유용한 기술로 인식되고 있으며, 식량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농업은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다. 기후변화는 가뭄, 홍수, 병해충 증가 등으로 작물 재배를 위협하며, 동시에 농업은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으로도 지목받고 있다. 이처럼 복합적인 조건 속에서 탄소 시비는 일부 나라의 경우 단순한 기술이 아닌 기후윤리적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식물 생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널리 입증돼 있다. 일부 농가나 연구기관은 CO₂를 일종의 ‘탄소 비료’처럼 적극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수확량이라는 단일 지표에만 초점을 맞춘 제한적 시각일 수 있다. CO₂ 주입이 양적 생산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정당한 농업 기술’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더 나은 농사’라는 발상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탄소 시비는 ‘CO₂는 유익하다’라는 인식을 퍼뜨릴 수 있어, 기후위기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크다. 특히 유럽연합(EU)에서는 농업 부문의 탄소 회계를 강화하고,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에 농업을 포함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탄소 시비는 탄소중립을 향한 사회적 합의에 역행하는 기술로 비춰질 수 있다.
작물 품질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CO₂ 농도가 증가하면 수확량은 늘지만 단백질, 철, 아연 등 주요 영양소의 농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식량의 ‘양’보다 ‘질’이 중요한 시대에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또한 고농도 CO₂ 환경에서는 병해충 저항성 강화나 작물의 생리장애 발생 가능성도 일부 보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탄소 시비는 기후위기 시대에 완전히 배제되어야 할까? 결론은 ‘균형’이다. 탄소 시비는 특정 환경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하나의 기술일 수 있지만, 농업의 지속가능한 전환 전략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단순한 기술적 유효성뿐 아니라 윤리적, 생태적 정당성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기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농업은 더이상 단순한 생산 산업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자 책임자로서, 농업은 적응과 감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 농업계는 단기적인 수확량 증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토양 탄소 저장, 생물다양성 보전, 저탄소 농법 같은 전략과 탄소 시비 기술을 조화롭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과제다. 이제는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지속가능하고, 더 책임 있는’ 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 탄소 시비에 대한 논의는 그러한 전환을 시작하는 중요한 물음이 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전남 농업에서도 탄소중립 측면에서 탄소시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