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농촌 고령화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현실이다. 특히 전라남도의 농촌지역은 초고령화 사회를 넘어 ‘1인 고령가구’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몸이 아파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농업인들,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외로운 노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농업 근대화를 이끌었던 주역들이지만, 여전히 ‘일 중독’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협전남본부가 최근 선보인 '전남농협 해피BUS데이'는 작은 신호탄이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지난 5월 14일, 전남농협은 장흥군 대덕다목적복지관에서 '해피BUS데이' 발대식을 열고 농촌 종합복지서비스의 출발을 알렸다. 이 사업은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농촌왕진버스와 대학생 재능기부를 결합한 복지 프로그램이다. 농촌왕진버스는 농림축산식품부, 전남도, 지자체, 농협이 함께 의료기관과 협력하여 농촌지역 주민들에게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서영암농협을 시작으로 전남 13개 시군에서 순차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여기에 전남농협은 대학생 재능기부를 더했다. 광주대학교 등 4개 대학의 봉사단과 협력하여 농촌 일손 돕기와 전공을 살린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순한 일회성 봉사가 아닌, 농촌 고령자들의 생활과 밀착된 맞춤형 복지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피BUS데이'는 규모 면에서는 아직 작고, 지원 범위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 상징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는 농업 근대화를 이끌어 온 세대들에게 사회가 이제서야 보내는 첫 번째 '돌봄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도 묵묵히 땅을 일구고 지역을 지켜온 농업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다. 바로 대만 농업위원회(COA)가 202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그린케어 스테이션(Green Care Station, 綠色照顧站)'이다. 대만은 우리보다 앞서 농업 근대화 세대의 고령화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린케어 스테이션은 농촌 고령자들이 자연과 교감하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하고, 지역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연기반 복지 프로그램이다. 주요 활동으로는 원예치료, 꽃꽂이, 모스볼 만들기, 텃밭 가꾸기 등 농업과 자연을 활용한 감각 자극 및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시각적 풍경 치료와 손으로 직접 체험하는 활동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며, 농업·어업 협회와 협력하여 지역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대만은 지역 주민, 특히 여성들의 참여를 통해 지역 특산물 개발과 고령자 돌봄 서비스를 연계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하고 있다. 고령자들에게는 지역 생산 식재료를 활용한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고, 함께 식사하는 공동체 활동을 통해 사회적 고립을 예방한다. 또한 맞춤형 운동 및 재활 프로그램, 정기 건강 검진, 만성 질환 관리 등 의료 복지까지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농촌 고령자의 삶의 질 향상, 지역 공동체 회복, 농업·농촌 자원의 재발견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포괄적 접근은 우리나라 농촌 복지 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재 전남농협이 시작한 '해피BUS데이'는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내용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해피BUS데이'가 가진 가능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는 단순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 농업의 근대화를 이끈 세대들에게 사회가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사업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농업·농촌의 가치 회복과 지속 가능한 농촌복지 모델로 발전해 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남농협과 지자체, 정부가 함께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지역 자원과 인적 자산을 활용한 농촌 고령자 맞춤형 복지 프로그램을 더욱 정교하게 설계하고, 의료·복지·문화·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합 돌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해피BUS데이'는 작은 출발이지만, 그 방향성만큼은 정확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농촌 고령자들의 삶을 바꾸고, 농업의 미래를 지켜내는 '농촌형 복지 모델'을 제대로 설계하는 일이다.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이 좋은 본보기다. 전남의 '해피BUS데이'가 이 방향으로 발전해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농업 근대화 세대에게 사회가 진 빚을 갚는 진정한 방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