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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죽순 초무침에 담긴 치유와 감사 - 남도치유한식연구회 회장 장영애
  • 기사등록 2025-05-15 08: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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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마음 한켠이 조용히 젖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이름 하나, 얼굴 하나. 어느 날 길을 묻던 나에게 기꺼이 길을 내어주었던 사람, 우리는 그런 이를 ‘스승’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이름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게 된다.

 

어린 시절, 교실 가득 날리던 분필가루 냄새와 함께 떠오르는 것은 치마를 자주 입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다. 지적보다는 기다림으로, 강요보다는 신뢰로 가르침을 주시던 그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감동은 아마도 '치유'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흔들리고 상처받은 마음에 조용히 손을 얹어주며 삶의 방향을 일러주던 스승의 존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넘어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주는 이였다.

 

스승의 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결코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오랫동안 음식을 해오며, 봄날의 죽순 초무침 한 접시처럼 조용히 정성을 담은 음식 하나로도 깊은 감사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순은 자연이 선물한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대나무 뿌리에서 자양분을 받아 쑥쑥 자라나는 죽순의 모습은 제자의 성장을 이끄는 스승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죽순은 금세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다. ‘탁신’이라는 천연 독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충분히 삶고, 식히고, 절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식탁 위에 오를 수 있다. 그 정성어린 과정은 스승의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죽순 초무침은 그 정성의 결정체이다. 잘 삶아낸 죽순을 식혀 결대로 찢고, 피고막을 더해 초고추장에 조심스럽게 무쳐낸 한 접시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상큼하게 입맛을 돋는다. 여기에 약간의 설탕과 식초, 참기름 한 방울을 더하는 일은 단순한 조리법 너머의 배려이자 위로이다. 마치 스승이 거친 날것의 마음을 다듬고 부드러움과 조화를 더해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죽순은 예로부터 절개와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죽순을 애호하며, 송나라 주희(朱熹)는 "어린 대나무는 성정을 잃지 않는다(筍不失其性)"고 했다. 바르고 곧은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떠올리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식재료는 없을 것이다. 또한 죽순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해독 작용이 뛰어나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어주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음식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식이 가진 진정한 치유의 힘이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스승은 존경받는 존재였고, 그 마음은 몸을 낮추는 태도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스승의 날은 종종 의례적인 꽃 한 송이, 형식적인 인사로 지나가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시간을 들여 마음을 표현하는 데서 비롯된다. 죽순 초무침처럼 천천히 삶고 다듬고, 간을 맞추는 과정 속에 진심이 깃드는 법이다.

 

스승이란, 우리가 힘겨운 시기를 견딜 수 있도록 마음의 밑거름이 되어준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은 봄 햇살 속에서 돋아나는 죽순처럼 우리 안에서 다시 자라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승의 날은 단지 과거를 기리는 날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오늘의 삶에 되새기고 실천하는 날이어야 한다.

 

올해 스승의 날엔 마음을 담은 식탁을 차려보는 건 어떨까? 꼭 직접 만든 죽순 초무침이 아니어도 좋다. 식탁과 식사가 어렵다면 그저 스승을 떠올리며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받았던 치유와 감동, 배움의 의미가 다시금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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