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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과 영암의 도선국사 그리고 풍수밥상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04-29 08: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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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활동한 고승이다. 광양 옥룡사비문(玉龍寺碑文)에 따르면, 도선은 영암 출신으로 속성은 김씨, 어머니의 성은 강씨다. 그는 15세에 화엄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고, 20세에는 곡성 태안사에서 수행했다. 38세이던 864년, 광양 백계산(白鷄山) 옥룡사(玉龍寺)에 정착하여 수행에 전념하다가, 72세에 그곳에서 입적했다.

 

영암에서 태어나 광양에서 생을 마감한 도선국사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불교와 함께 풍수 이론을 배우고, 이를 한반도에 체계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풍수사상(風水思想)은 자연의 지형과 기운(氣)을 중시하여 인간의 삶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사상이다.

 

오늘날 광양과 영암은 도선국사의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광양에는 도선국사가 거처했던 옥룡사 인근에 '도선국사마을'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민박,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영암의 구림마을과 인근 왕인로에는 도선국사 탄생지와 연계한 한옥 민박과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두 지역 모두 천연염색 체험장을 갖추고 있어, 천연염색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특히 도선국사의 풍수사상을 기반으로 한 '풍수밥상'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활용하기에 적합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풍수밥상이라는 개념은 다소 낯설 수 있다. 풍수(風水)는 땅과 하늘,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야 삶이 편안해진다는 동아시아 고유의 지혜다. 신비로운 길흉화복을 논하기보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지향하는 실용적 철학에 가깝다. 이러한 풍수의 사유를 식탁에 옮긴 것이 바로 '풍수밥상'이다.

 

풍수밥상은 단순한 '건강식'을 넘어선다. 밥 한 끼에 자연의 이치를 담아 몸과 마음, 나아가 주변 환경까지 조화롭게 다스리려는 삶의 태도다. 말하자면 '식탁 위 풍수지리'인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원칙은 오방색(五方色)의 조화다. 동쪽의 푸른색, 남쪽의 붉은색, 서쪽의 흰색, 북쪽의 검은색, 중앙의 노란색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을 식탁에 골고루 담아야 한다. 푸른 시금치나 봄동, 붉은 고추나 딸기, 하얀 두부나 무, 검은콩이나 김, 노란 단호박이나 계란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방색은 단순한 미적 효과를 넘어, 오장육부를 고루 건강하게 하고 자연의 기운을 몸에 스며들게 한다. 색의 조화는 마음을 밝히고 식욕을 돋우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균형 있게 불러온다.

 

풍수밥상은 또한 계절의 흐름을 따르는 식탁이다. 봄에는 연한 나물과 어린잎, 여름에는 수분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 가을에는 뿌리채소와 곡물, 겨울에는 저장성이 좋은 김치와 곡류를 중심으로 식탁을 차린다. 이는 자연이 인간에게 내어주는 리듬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생활 방식이다.

 

냉동과 가공식품은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자연과의 연결 \고리를 약화시킨다. 반면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밥상은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제때 공급하고, 사계절에 맞춰 건강을 조율하는 자연스러운 치유법이 된다.

 

조리 방법도 풍수적 관점에서 중요하다. 삶기, 찌기, 굽기, 생식 등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흙(土) 오행(五行)의 기운을 고루 불러야 한다. 채소는 일부는 생식으로, 일부는 찌거나 볶아내고, 고기나 생선도 굽기만 하지 않고 삶거나 쪄서 담백하게 즐긴다. 조리법의 다양성은 식재료의 기운을 풍성하게 하고, 몸속 흐름을 조화롭게 다듬는다.

 

또한 식사 방향도 고려된다. 식탁에서는 가능하면 동쪽을 향해 앉아 식사하는 것이 좋다. 동쪽은 새벽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푸른 생명의 기운이 솟아나는 자리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식탁 앞에서 '자연과 함께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음식을 대할 때, 재료가 자라온 자연, 농부의 손길, 땅의 숨결을 함께 떠올리는 것 자체가 풍수의 정신이다.

 

풍수밥상은 고리타분한 전통이 아니다. 오히려 빠름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식탁이다. 느림과 조화를 선택하고, 자연의 리듬에 삶을 맞추는 지혜다. 밥 한 끼에 담긴 자연의 기운은 삶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다.

 

따라서 광양시와 영암군에서 오방색으로 차린 풍수밥상을 개발해 관광 상품화한다면, 지역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다. 도한 소비자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방향까지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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