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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엄니 텃밭과 밀파 농업 시스템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4-10-18 08: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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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멕시코 구릉지의 험난한 산길을 걷다 보면 농지에 다양한 농작물이 섞여서 자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농지엔는 커다란 호박잎으로 덮여 있고, 우뚝 솟은 옥수수에 줄기에는 강낭콩의 줄기와 잎과 얽혀 있고, 군데군데 허브도 있다. 언뜻 보면 방치된 농지에 여러 작물이 자연스럽게 자란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밀파(milpa)라고 불리는 것으로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간작 농업 및 식량 시스템이다.

 

밀파(milpa)라는 단어는 나와틀어의 밀리(milli)와 판(pan)에서 유래했다. 메소아메리카에서도 지역에 따라서는 밀파가 옥수수를 지칭하거나 옥수수 작물과 경작지를 의미하기도 하나 대체적으로 간작농업 시스템이다. 마야인과 다른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의 농학에 기반한 밀파 시스템은 화학 살충제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옥수수, 콩, 호박 작물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스페인인들이 멕시코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행해져 왔던 전통 농업 시스템인 밀파의 토지 보존 주기는 2년의 경작과 8년의 휴경이다. 밀파에는 옥수수, 아보카도, 다양한 종류의 호박, 콩, 멜론, 토마토, 칠리, 고구마, 히카마(Pachyrhizus erosus), 아마란스, 벨벳콩(mucuna) 등 10여 가지 작물을 한꺼번에 심는다.

 

밀파는 농업생물다양성과 영양학적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것은 단일작물의 대규모 집약적 농업과 달리 자연재해에 충격이 작고, 작물은 다양한 생태적 조건에 적응하면서 해충, 질병 및 기후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자 식량안보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지역민들의 영양학적인 측면에서도 보완적이다. 옥수수에는 신체가 단백질과 니아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아미노산인 라이신과 트립토판이 없다. 콩에는 라이신과 트립토판이 모두 있다. 호박은 다양한 비타민을 제공하고, 아보카도는 지방을 제공한다. 옥수수 토르티야 사이에 고기·해산물·치즈 등을 넣어서 구운 전통적인 멕시코 별미 엔칠라다(enchilada) 또한 밀파에서 유래된 것이다. 밀파에서 생산된 다양한 작물은 식단의 다양성에 의해 과체중, 비만, 비전염성 질병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구환경기금(Global Environment Facility) 및 지역 연구 기관인 국립생물다양성 협의회(National Council for Biodiversity)와 협력하여 멕시코 농업의 유전적 다양성과 전통적인 농업 생태계 보호에 나서고 있다. 밀파와 같은 전통적인 농업 생산 방법의 활성화 및 촉진을 위해 농부들이 이러한 농업 방식을 더 많이 재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밀파의 개념은 단순한 농업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구성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여기에는 농부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관계, 그리고 작물과 땅 모두와의 뚜렷한 개인적 관계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밀파를 만드는 것은 가족, 지역 사회, 우주를 하나로 묶는 중심적이고 가장 신성한 행위이다. 다양한 작물이 생존 경쟁을 하면서도 보완적으로 되어 식량안보에 기여하고, 영양학적으로 균형있게 하는 밀파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건전성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 농업생물다양성, 지역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등 다양한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는 밀파는 전남의 곳곳에서 산재해 있는 텃밭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오랜 전통이 있는 텃밭에는 별의별 작물을 다 심어 놓고, 가정에서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수확해서 이용해왔다.

 

단일작물을 대량 재배하고, 필요한 것들은 마트에 다 있는 시대이지만 전남 곳곳의 시골에서는 아직도 존재하는 텃밭은 연로한 어머니들이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들이 고령화되고, 사망이 증가하면서 그 텃밭들이 사라져가면서 대를 이어온 작물도, 음식문화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시대 변화로 남도의 재래종 작물, 남도의 음식문화의 근원지인 텃밭을 지킬 순 없다고 해도 그 문화만이라도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겨, 다양하게 활용했으면 한다.

 

[참고자료]

허북구. 2022. 지역 식재료 소멸 현장, 영광 법성포 오일장.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2022-04-21).

허북구. 2020. 진도 토종 마늘과 포항 과메기.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2020-11-09).

허북구. 2020. 전남 토종감 그리고 남도의 맛과 멋.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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