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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 들춰보기: 살아 있는 나주 전통 부채 제작 기술 -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부학회장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허북구
  • 기사등록 2021-07-28 13: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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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배영래 기자]나주에는 전통부채를 전업으로 하는 곳이 없다. 


국가 및 지방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주 전통부채의 무형문화는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으나 그렇지는 않다.

 

나주의 전통부채 제작 기술의 기능은 흔히 고 김홍식 장인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고 김홍식(金鴻植) 장인은 1915년생(추정)으로 1888년생(추정)인 고 모기남(牟基南) 장인으로부터 부채 제작 기술을 배워서 부채 공장 등을 하였으며, 1984년에 작고했다. 생전에 부채 제작을 생업으로 했으므로 나주 전통 부채를 생업으로 했던 마지막 장인이다. 

 

고 김홍식(金鴻植) 장인은 생전에 부채 공장을 했을 때 딸과 함께했으므로, 그 기술은 오래되었으나 고스란히 따님이 보유하고 있다. 나주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 김홍식 장인 외에 나주 석정마을(돌고개라 불림)에서는 많은 분들이 전통부채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때 중요무형문화재 99호인 소반장 김춘식 선생님은 석정마을의 전통부채 제작 기술을 배웠다. 

 

김춘식 선생님은 고 김홍식 장인이 사용하는 부채자루를 만들어 주면서 나주전통부채와 인연을 맺었다. 김홍식 장인의 작고 후 나주 전통부채 제작 기술의 전승 맥이 끊긴 것에 대해 안타까워 나주 전통부채 제작 기술을 가진 사람을 수소문한 결과 석현리(현재 석정마을)에서 부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석현리에 가서 어르신들한테 물어보니 일제 강점기 때는 마을 전체가 부채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석현마을 제당숙 아들인 고 김낙균(金洛均, 1919년생으로 김낙천으로 불림) 형님에게 물어보니 해방 전까지 부채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연장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김춘식 선생님은 부채 제작 연장을 준비한 고 김낙균 장인을 영산포 집으로 모셔와 부채 제작 기술을 배웠다.

 

김춘식 선생님은 부채 손잡이를 만든 경험은 많았으나 나주부채는 부채 손잡이보다는 살이 특징으로 죽공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였다. 하지만 김춘식 선생님의 형님은 나주 반남면 신촌리에서 대바구니 공장을 하였는데, 형님의 일을 도우면서 대나무를 작업한 경험이 있었다.

 

김춘식 선생님 군대를 제대 후 나주반(상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장사가 잘 안되었을 때 대바구니 공장을 하는 형님 친구가 걸대바구니(보리쌀을 삶아서 걸어 놓은 대바구니라고 했다)를 만들어 판매하라고 권유를 했다. 그래서 대바구니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했으며, 신혼 때는 대나무로 찬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부챗살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쪼개고 다듬는 데 바로 적용이 되었다.

 

더욱이 집안 형님을 영산포 집으로 모셔와 부채 제작 기술을 부인도 살 올리기 등을 함께 배웠다. 이외에 나주 전통부채 유물을 조사하고 특징을 조사 후 모형을 만드는 등 연구를 계속했다(사진). 이로써 예전의 나주 전통부채의 제작 기술을 고스란히 배우고, 옛날 나주부채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왔다. 따라서 현재 나주 전통부채의 제작 기술은 그 맥이 끊기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


* 이글의 내용에는 2017년 12월 12일 나주반전수관에서 김춘식 선생님을 인터뷰한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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