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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우스터의 검정배와 광양 백운배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0-11-03 08: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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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배의 색깔의 색깔이 다양해지고 있다. 붉은색 배, 노란색 배, 검정색 배, 초록색 배 등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배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색깔의 배를 볼 수 있게 된 데는 다양한 자생종배의 유전자원 덕분이다.

 

각지에 자생하는 배들은 모양, 크기, 색깔, 향 등이 다양하다. 이 중 일부는 국제슬로푸드 생물다양성재단(Slow Food Foundation for Biodiversity)의 ‘맛의 방주’에 등재되어 있다. 맛의 방주는 이탈리아 브라에 본부를 두고 150여 개국 회원 10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국제기구인 슬로푸드 국제 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통음식 보호 프로젝트이다.

 

맛의 방주에는 우리나라 자생배중 진안 ‘마이산 청실배’와 ‘남양주먹골황실배’가 등록되어 있다. 외국의 자생배 중에는 영국 우스터(Worcester) 지방의 자생종인 ‘검정 우스터 배(Black Worcester pear)’가 등록되어 있다.​

 

검정 우스터 배는 과일 표면이 검정색이다. 완전히 검정색이라기보다는 적색이 강해서 검게 보이는 배이다. 이 배의 역사는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388년 초 수도원에서 재배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검정 우스터 배의 특징은 일반적인 배 보다 크고, 과피가 검정색이며, 저장성이 매우 좋다. 생과용으로는 그다지 좋지 않아 영국식 조림배와 요리용, 베이킹, 푸딩 및 파이용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배나무는 병충해에 강한 편이다.

 

우스터의 검정배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 때 성황을 이뤘으며, 1950년대부터는 상업적 재배가 중단되었다. 멸종 위기를 우려한 우스터(Worcester) 지역민들은 이 검정배를 지역의 상징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스터셔 카운티 협의회(Worcester shire County Council)에서는 검정배나무 꽃을 배지에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는 퍼쇼어 칼리지(Pershore College)와 협력하여 배나무 식재 및 판매를 하고 있다. 검정배는 또 국제슬로푸드 생물다양성재단의 ‘맛의 방주’에 등재했다. 이용법의 개발과 홍보에도 적극적이어서 검정배를 통해 우스터 지방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영국 우스터셔에 ‘검정 우스터 배’가 있다면 광양시에는 자생종인 ‘백운배(白雲梨)’가 있다. 백운배는 문배, 청실배, 취앙네, 남해배, 무심이배, 황실배 등과 함께 대표적인 산돌배(Pyrus ussuriensis)이다. 전남에서는 보기 드물게 크고 향기가 있는 자생배이다. 광양에서는 예로부터 이 백운배를 감기 및 천식의 민간요법에 사용해 왔다.

 

백운배는 육질이 단단하고 신고 배에 비해 당도가 떨어진다. 생식용으로는 기호성이 낮기 때문에 광양에서는 배즙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배즙은 야생배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판매하고 있는데, 백운배라는 이름은 재배 품종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농가들은 백운배 대신 ‘참돌배’, ‘백운산 참돌배’ 또는 ‘백운산 야생 참돌배’, ‘토종 산돌배’ 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배즙을 좀 더 팔아보겠다고 광양의 고유 자신인 ‘백운배’라는 이름을 스스로 걷어 차 버리고 있는 셈이다. 백운배는 광양 백운산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돌배라고 하는 순간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돌배로 보편화되어 버리고, 광양 고유의 개성적인 자원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 우스터 지역 사람들이 지역의 검정배를 보호하기 위해 지역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맛의 방주’에 등재하였으며, 묘목을 번식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검정배를 통해 지역을 알리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광양 백운배는 해외의 야생배 이용 사례를 감안해 볼 때 와인 등 다양한 가공 상품으로 개발 여지가 많다. 또 백운배의 배즙은 광양 막걸리, 광양기정떡 등에 활용하는 것에 의해 광양의 주류와 음식의 맛을 개선하고, 광양 특색을 강화시켜서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소재적 가치가 크다. 이 때 돌배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때 보다는 백운배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때 차별화가 되고 가치가 높아진다.

 

홍길동, 심청 등 역사적 사실이 희박한 것도 지역과 연계해서 활용하고 있는 지자체가 있는데 비해 있는 것도 버리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백운배나무를 가꿔 놓고 오죽했으면 이름까지 바꿨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활용성과 장래성을 고려할 때 백운배라는 이름의 가치가 분명 크다.

 

이 가치를 지키며 활용하고,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광양시차원에서도 ‘맛의 방주에 등재’하는 것은 물론 백운배를 이용한 상품개발, 광양 특산물과 연계시켜서 소비 창출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외. 2009. 백운배의 화학성분과 생리활성 효과. 한국지역사회생활과학회지 20(4):549-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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