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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 위병순씨 고등학교 졸업 대학 새내기
  • 기사등록 2013-02-10 18: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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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꿈 푸른 날개 어깨에 메고 / 자갈길 꿈길 따라 학교 가던 길
해맑은 소녀들의 재잘거림에 / 날던 새도 날개 접고 귀 기울이고
들꽃도 향기 담아 고운 미소 보냈었다.

꿈 많던 어린 소녀 / 가난의 원죄 앞에 / 배움의 길 날개 접어 가슴에 묻고
고달픈 여자의 길 달려오면서 / 한 자루 촛불 되어 바쳤던 희생
만학의 값진 선물 가지고 왔네.

창공을 날 수 있는 날개 있다면 / 저 멀리 하늘까지 높이 올라가 / 은하수로 붓 만들고
별빛으로 먹을 삼아 / 아주 크게 쓸 것이다. / 내 이름 석 자 옆에. / 빛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고.
- 위병순 -
 
위병순(68세) 씨의 이력을 듣다 보면 마음까지 바빠진다. 현 장흥 안양농협 이사, 장흥군 재향군인회 향군여성회 안양면 회장, 장흥 자활센타 노인돌보미, 안양면 풍물회장, 주민자치위원, 그리고 4년 전부터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학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직함 뒤의 그녀의 인생에는 고비고비 어려움의 흔적이 역력하다.

장흥이 고향인 위병순 씨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지만 집안 어른들이 딸들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여 일찌감치 중학교 졸업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돌보며 살았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겠다고 굳이 고집을 부렸다면 부모님도 못 가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시절 여자들은 중학교에 진학하면 안 되는 줄 알았기에 서러웠지만 진학의 꿈을 접었다.

담배가게를 하던 친정에 담배를 사러왔던 남편과의 결혼부터, 그녀는 고난의 길은 시작되었다. 남편이 빚보증을 잘 못 서서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부엌살림 몇 가지로 살아 내야했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3형제를 낳아 기르는 동안 한 번도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조각이나 만화책이라도 늘 읽다가 잠들곤 했다.

논밭 품팔이, 식당 허드렛일, 화장품 외판원, 핫도그 장사, 농협직원 등 그녀의 직업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학교 앞에서 하던 핫도그 장사는 그전의 어떤 직업보다 수입이 좋았다. 그래서 늘 밀가루를 사기위해 안양농협을 드나들곤 했다. 그날도 핫도그 만들 밀가루를 사기위해 농협매장에 들어섰는데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농협부녀부장을 뽑는다는 공고문이었다. 눈에 불이 켜졌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초등학력이 전부인 그녀에게 농협 공채시험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언제까지 핫도그만 팔면서 늙을 수는 없었다. 낮에는 핫도그를 팔고 밤에는 공부에 매달렸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공부했다.

잠을 쫓기 위해 궁리하다가 눈등에 물파스를 바르면 괜찮을 듯하여 하룻밤 발랐다가 얼마나 눈이 쓰리고 아픈지 그날은 공부를 하나도 못한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오기를 가지고 시험 공부책을 보고 또 보며 공부에 매달려 1985년 40세, 1명 뽑는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 후 과장 승진 시험을 통과했고 상무로 퇴직한 것이 62세이다.

농협시험에 합격하면서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이 모두 해결됐다. 하지만 과장이고 상무로 재직하면서도 초등학력이라는 아픔에 억눌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당당하지 못했고 어딘지 주눅이 들어 있었다.

64세, 무엇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나이였지만,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평생을 학력 없는 서러움 속에 살았던 그녀에게 중학교는 꿈과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푸른 꿈 푸른 날개 어깨에 메고 자갈길 꿈길 따라 학교”로 달려갔다. 자동차가 없는 그녀가 장흥 안양면에서 목포까지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의 4년을 다니는 것은 고달픈 일이었다.

이 사람 차, 저사람 차를 여기저기 전화해서 타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려왔다. 하지만 1시간 30분 등하교 길을 힘들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배우는 기쁨이 너무나 커서 그만한 고생쯤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 달은 안양면까지 들어오는 차편이 없어서 장흥군내까지 와서는 안양면 택시를 매일 그 시간 그 자리에 예약해 놓고 억척스럽게 다니기도 했다.

전남 장흥 안양면에서 목포까지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 참 바쁘지만 기쁘게 달려왔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하루는 9시쯤부터 자활센타 계약직직원으로 노인 안전확인과 안부살피기 업무가 시작된다.

안양면 11개 마을을 돌며 자전거를 타고 일을 보다가도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책가방을 싸서 동승차에 오른다. 파김치가 된 몸이 등교차에 올라가면 하루 중 가장 편안한 휴식시간이 된다.

5시 30분 야간반 1교시가 시작되고, 9시 10분에 5교시가 끝나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가 다 된다. 숙제를 조금 하다보면 12시가 넘는 것은 보통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68세 나이에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새내기가 되는 꿈에 부풀어있다. 현재 하고 있는 노인 돌보미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 노인들을 제대로 섬겨보고 싶어서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받는 고등학교 졸업장이기에 감격도 나이만큼이나 크다.

창공을 날 수 있는 날개 있다면 / 저 멀리 하늘까지 높이 올라가 / 은하수로 붓 만들고
별빛으로 먹을 삼아/ 아주 크게 쓸 것이다. / 내 이름 석 자 옆에. / 빛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고.

올해로 개교 52년을 맞이하는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는 15일, 제25회 졸업증서수여식이 있다.

이번 졸업식에서는 중학교 225명, 고등학교 341명이 졸업을 한다. 이들 졸업생들은 시간적, 경제적 이유로 어린 시절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는데 이날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영광의 졸업장을 받는다.

이번 졸업생 가운데 최고령자는 중학교 김광우(남 74세)씨, 민삼남(여 72세)이고 고등학교는 김명옥(남 70세), 박용순 (여 75세)씨이다. 여자 최고령 졸업생 박용순 씨는 국가지정 진도남도들노래 무형문화재이다.

졸업생 가운데 지체장애 1급의 김영미 씨는 아기 때 앓은 소아마비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다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건너와 목포제일정보고등학교에서 생애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즐긴 학생이다.

고등학교 2년 과정 동안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준 남편의 도움으로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공부하는 즐거움을 라디오 방송에 여러 번 알리기도 할 만큼 모교사랑이 극진하다. 학교성적이 상위권에 속했던 그녀는 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수시모집에 당당히 합격하여 3월이면 13학번 새내기가 된다.

고등학교 341명의 졸업생 가운데 2013학년 대학합격자는 목포대학교 2명, 세한대학교 18명, 초당대학교 16명, 호남대학교 1명, 고구려대학교 16명, 동아인재대학교 42명, 목포과학대학교 71명 등 4년제 대학교 37명, 2년제 대학 158명이다.

졸업식 답사를 맡은 이순덕(초당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합격)씨는 답사에서 “교복입고 학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워 몰래 숨어 흘리던 눈물, 학력이 없어 떳떳하게 나설 수 없어 가슴 조이던 눈물, 남과 같이 계속 공부할 수 없는 가정환경을 탓하며 부모님을 원망해 흘리던 눈물, 가슴에 얼룩져 있던 그 많은 눈물의 자국들을 늦게나마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 와서 한 겹씩 지워낼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과정을 다 이겨낸 감사와 기쁨의 눈물만 남았다.” 고 했다. 감격과 감사로 얼룩진 그녀의 목소리와 눈에 맺힌 이슬에서 그녀의 기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정규학교교육의 기회를 놓친 성인과 청소년들을 발굴하여 당당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현재 2013학년도 중.고 신입생을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다.

<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제25회 졸업식 >

일 자 : 2013년 2월 15(금)일 오전 10:30
장 소 : 본교 운동장(우천시 강당)
졸업 인원 : 총 566명 (中 225명, 高 34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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