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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에게!
  • 기사등록 2012-09-07 16: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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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하늘이 청명하고
햇살이 따사로와,

단풍잎 새 숨어
짝지은 아이들.

가을 노래 지저귐에
덩달아 흥이 나,
어깨춤 흐적이며,

너에게
붉고 노란 노을 감싸 줄,
양산 하나 보내어
무척 기뻐할 줄 알았더니

오늘.
이처럼 비바람 치니
차라리 우산 하나
보냈더라면 좋았을 걸.

눈썹마저 타고
흐르는 땀방울.
눈물, 콧물 뒤범벅에
타드는 땅 적시도록
장작개비 무진장 피워,

온 세상 어두운 곳까지
메아리 되어 울리는
범종을 만들자 했건만,

식어버린 화로 앞에
골목길 누비던
말방울이 그리웁구나.

내가 너에게
격식도 형태도 없는
애타는 연가 부른지,
꼬박 서른다섯 해 지났건 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연은,
내 가슴이 허전하여
그저 부끄럽기 때문이다.

가희야 !
요사이는 아무도 찾지 않는
짚 새기라도 엮어,
하루에 한 발자국씩
너에게 가고 싶다.

아마 너를 보지 못한 채
명이 다해 멈출지라도,
나는 도저히 제자리에
머무를 수 없구나.

가희야 !
너는 내가 네게 가는
더딘 발걸음으로,
날이 가고 달이 가도록
버들개지 휘늘어진
그늘 아래.

학처럼 고운 목 빼든 채,
안타까운 몸짓으로
초연한 깃발 나부끼며,
언제나 그 자리.
서.
있으려는지 ...........

사춘기가 무르익어 감성이 터질듯하던 고교 2년 학창시절에 깊고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며 뒤척이다 우연하게 가슴으로 맞은 가희는 오직 소녀의 꿈으로만 남아 있었을 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따금 어렵고 힘든 현실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인고의 쓰라림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그는 나에게 불현 듯 찾아오지도 않았지만, 내가 애써 걸음을 옮겨 찾아 가지도 못 하였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속으로만 애태워 그리워하며 꿈꾸던 에덴의 동산과도 같았습니다.

언젠가 어스름 땅거미를 뒤로 하고 여명의 빛이 스멀스멀 달려오는 새벽의 강가에서 혹시라도 길을 잃고 방황이라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해보았지만,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서른다섯 해가 지나던 2007년도의 꼭두새벽에 지나온 뒤안길이 허망하고, 나아가야 할 앞날이 착잡하여 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못 이겨 격정 한마디 토로 하였습니다.

그러한 날들로부터 또다시 다섯 해가 무상하게 지나가버린 지금, 이제는 가희를 향한 갈증으로 현기증이 나는 순간이지만, 더 이상의 연가를 불러댈 여력이 없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불타던 정열에 기대어 남은 한 조각 희미한 꿈일지라도 조심스레 돌이켜 보기만 할 뿐입니다.

자질구레한 살림살이 정리하고 광활한 대지를 향하여, 허름한 배낭 메고 나무 막대기 지팡이 삼아 허위허위 길 떠날 채비를 서둘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다섯 해 전 날마다 한발씩이라도 찾기로 하였다가, 현실의 애절한 미련 때문에 차마 떠나가지 못하였던 가희를 향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계절에는 분주해질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는 나와 주변의 힘들고 고단한 모든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거나 간절하게 구하려 하는 “가없는 희망”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판도라의 상자를 뚫는 마지막 손님으로 그가 있음에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내일의 의미를 조금씩이라도 키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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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ds4aqf2012-09-09 17:32:44

    일상의 삶속에서 인고의 긴 터널을 지나 초연함으로 승화된 님의 마음을 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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