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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덫, 사채
  • 기사등록 2012-05-18 16:11:58
  • 수정 2014-12-04 16: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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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이승의 마지막은 죽음이고 불가에서는 해탈이라 표현을 합니다.

삶의 번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저승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내세의 문을 향하여 가뭇없이 떠나간 사람들의 허상과 거푸집으로 남은 육체를 꽃으로 장식한 상여에 곱게 모셔, 질서 정연하게 원래부터 내려왔던 산천으로 돌려보내는 성스런 작업을 서두르게 됩니다.

행렬은 망자가 살아가는 동안의 말 못할 애환을 토 하듯이 애달픈 가락을 선두로 엄숙하게 이별의 순간을 향하여 천천히 진행해 가며 뒤따르는 가족들의 흐느낌은 속절없이 땅바닥에 흩어집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언덕과 실개천들의 온갖 장애가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정성으로 일정한 힘이 모아져 목표지점을 향해 계속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도중에 외나무다리와 마찬가지로 물을 담은 논둑길을 지날 때는 어느 한쪽에서는 발을 적셔야 할 순간이 닥쳐오는데 망자가 서운할 정도로 발을 빼려는 이승의 이전투구가 심상치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한쪽이 몽땅 발을 적시고 길을 가는데 그중에서도 전혀 발을 적시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고 망자의 자리를 파고들어 아예 상여 위로 올라타는데, 더해지는 무게는 온전히 나머지 사람들이 나누어 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승과 저승의 공간을 넘나들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는 아랑 곳 없이 자신의 발만큼은 온전하게 지켜내겠다는 참으로 이기적이고 무지막지한 발상인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변호사이자 과학도인 ‘라부아지에’는 1774년경 ‘질량불변의 법칙’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깨달아 발표를 하였는데, 온 세상의 물질은 어떠한 화학적인 융합과 분리를 거듭하더라도 총체적인 무게는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생과 사에는 전혀 상관없이 지구상의 질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바탕으로 견주어 보면 이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어느 한사람이 나누기를 거부하거나, 기쁨과 희열을 혼자서 독차지 하려 한다면,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가 그대로 전가되어 결국에는 ‘희로애락 불변의 원칙'이 은연 중 적용되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어느 한사람이 이승에서 분에 넘치게 호의호식하는 동안 말 못할 고통에 시달리는 다수가 생겨나게 마련이기에, 편안하고 안락한 시절이라도 힘들고 어두운 곳의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하고, 어둡고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앞날의 희망과 꿈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은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만약 약속을 어기게 되면 살 1파운드를 떼어주어야 한다는 불평등 계약을 체결합니다.

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겼을지라도 나중에 채무변제 의사를 밝힌 ‘안토니오’에게 굳이 살 1파운드를 요구하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욕심이 많고 비열하면서 인정이 없는 인간상의 표상으로 보여 지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자본을 빌려주면서 효용가치를 이용한 대가로 일정한 반대급부를 요구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이자의 명목인 셈입니다.

이자율이 올라 갈수록 채무자의 고통은 한없이 증가하면서 채권자의 이익은 무한정 쌓여만 갈 것인데, 이러한 경제행위들이 도를 넘어서다 보면 극도로 왜곡이 된 이분법적인 봉건시대와 다름이 없는 착취의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봉건 영주들은 토지를 매개로 하여 시민들의 생명 고혈을 인정사정없이 짜낸 것에 반하여, 현대의 자본가들은 이자를 내세워 서민들의 주머니를 무차별하게 훑어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이러한 불균형은 그 차이를 점점 더 넓혀가면서 결과적으로 가진 자의 자본에 예속이 되는 못 가진 자는 노예나 다름없는 비참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병폐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와 반하는 사회주의 경제이론이 발전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스스로의 장점을 멀리하고 가진 자의 탐욕에 의하여 왜곡의 과정을 거쳐 가면서, 결과적으로는 가진 자의 횡포가 난무하는 극화현상이 초래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동안에 자신의 발목에 진흙을 묻히지 않은 상여 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임승차를 노린다면 끝없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요즈음 신문지상을 살펴보면 매일 같이 사채를 사용하였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적인 이자를 감당 못하여 패가망신을 하였다는 우울한 보도가 수시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듯 피해신고를 받아 악덕 고리대금업자를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수사기관에서는 대규모의 인력을 투입하여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처럼 불합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이미 절단이 나있는 상태이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피해가 온전하게 회복이 되지 않을 뿐 더러 상처는 이미 상당 부분 곪아 터져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러한 불균형이 어제 오늘부터 제기된 사안이 아니고 십수년 전부터 악덕 사채업자에 대한 폐단으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으며, 누차에 걸쳐 이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논란이 거듭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버섯처럼 불법한 사금융이 계속하여 양산되는 이면에는 그만큼 위와 같은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급박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제 1 금융권이 요구하는 신용의 등급이 미달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이자율이 비싸도 제 2금융권의 문을 두드리다가 그나마 거절을 당하여 막막한 상황에서 급박하게 자금이 필요하다면 궁여지책으로 사금융의 광고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선이자 형식으로 고리를 떼어내고 지급하는 자체가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불합리한 계약임을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눈앞에 닥친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불나방과 다름없이 불법 사채에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닥치기 전 미리 가계의 긴축을 서둘러야 했던 시기에 지도층의 적정한 대책의 부재가 아쉬울 뿐 아니라, 기회를 놓쳐버린 상태에서 전세금이나 병원비등을 충당하기 위한 서민들의 생존에 대한 집념은 어떻게 보면 처절하게 비추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고리의 사채를 쓰느냐 아니면 파산의 멍에를 지느냐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서민들은 최종적인 오명을 둘러쓰는 것보다는 우선은 최악의 상황을 면하는 고리의 사채를 빌리는 길을 택하였을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누차에 걸쳐 사금융의 이자율이 일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을 공포하여 시행하고 있었음에도, 마치 이를 무시하는 듯이 상상을 초월한 고리의 사채놀이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공적인 관리가 허술하였으며 미리서 예방하는 정책이 펼쳐지지 못하였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제 불법한 사 금융에 대한 무거운 철퇴를 들어 세무,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의 유관기관이 힘을 합쳐 강력한 단속을 벌이는 것과 발을 맞추어, 금융기관에서는 파산 직전이나 파산에 이른 사람들의 회생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개발이 시급한 것입니다.

“희로애락 불변의 법칙”에 의하여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희열과 행복의 한 조각일지라도 나누어, 힘들고 어두운 곳에 내리는 무한한 자애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려운 지경에 처한 사람들도 스스로 자각 하여 소비의 욕구를 자제하거나 건전한 생활태도로 하루에 한발 짝 이라도 빈곤의 갭을 줄여가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상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고리의 이자를 적용하여 자신만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 한다면, 망자가 누워가는 상여를 올라타고 살아 있는 채로 따라가는 예약된 저승길을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일 뿐입니다.

어차피 서로에게 필요하고 진정한 거래로 이루어지려면 채권자가 부리는 욕망에 의하여 채무자와 함께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운명의 덫을 단호하게 걷어내고, 보다 합리적인 “적정한 이자율”을 적용하여 서로가 상생하는 희망의 고리로 전환해가는 참다운 지혜의 필요성이 더욱 간절해지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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