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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띄우는 편지, “연”
  • 기사등록 2012-01-16 16:04:41
  • 수정 2014-12-04 16: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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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상상을 뛰어 넘는 물질문명의 홍수 속에 인간의 발길이 하늘과 땅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으로 펼쳐져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칭이 결코 헛되이 보여 지지 않습니다.

선사시대에는 수시로 변화하는 자연환경도 우리의 생활을 위협하였지만, 종류를 달리하는 거대한 공룡들이 수시로 출몰하고, 하늘에서는 익룡이 출현함에 따라 한시라도 방심하면 생명을 잃는 순간이 비일 비재 하였을 것입니다.

까마득한 세월 동안 파충류 등의 공격을 이겨내야만 했던 인류는 지금도 그 후손인 뱀 등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역겨움을 느끼게 되는데, 태초에 아담과 이브를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 내린 개체 또한 사탄으로 뱀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인류의 역사는 자연과 공룡들을 비롯하여 상대적으로 강한 개체들과의 끈질긴 투쟁을 이겨내는 과정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생존의 본능을 불태우는 인간에게는 삶의 주 무대인 육지에서의 보장된 활동과, 물속에서의 자유로움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들과 같은 유연함을 꿈꾸어 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의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부터 시작된 집념은 결국에는 오늘날의 하늘을 수놓는 비행기의 출현을 보게 되었으며, 이제는 광막한 우주에 비행물체를 띄워 인간의 발길을 무한정 연장시키는 형국이 되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수 있는 날개와 물속을 마음대로 유영할 수 있는 지느러미 도 없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육, 해, 공의 광대한 공간을 모두 섭렵하여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는 현상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실패의 아픔과 뼈를 깎는 인내의 고충이 뒤따르고, 한 톨의 지혜라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모아, 이를 후세에게 알뜰히 전해주어 보다 진전된 기술로 거듭나도록 하는 축적의 과정인 담금질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방편이 되었던 것입니다.

초창기 인간의 꿈을 펼쳐가는 과정에서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면서,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유영을 할 수 있는 데다, 다소간 불완전 하더라도 뭍에서의 활동마저도 가능하였던 오리는 인간보다 더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헤아릴 수 없는 개체로 번식하여 하늘에 올라 엄청난 숫자로 하늘에 군무를 이루기도 하고, 강과 호수를 그 무리로 가득 채우는 세력을 과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리가 그만큼 다른 개체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훌륭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과 땅과 육지 어느 곳에서도 제자리를 보전하는 데는 상당한 힘이 들어 그저 고단하게 보일 뿐입니다.

무언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자나 독수리, 고래 등과 같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가면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스스로의 특출한 장점을 살리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공간이동에 대한 아무런 재능도 없었던 태초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광대한 하늘과 높은 산이 가로막혀 멀고도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을 것입니다.

대지에 삶의 터전을 두었던 한정된 의식의 공간을 임시방편으로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는 일환으로 대 창살을 깎아 종이나 천으로 연을 만들어 그곳에 실을 묶어 불어오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스스로의 창조물을 하늘에 떠 올리면서 대리만족을 노렸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는 미약한 인간이 하늘을 향해 띄우는 편지가 되어 절대자의 역량을 향하는 아득한 그리움과, 갈망하는 의식의 진전이 하늘을 주유하는 형태로 우리의 짧은 의식을 높고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린 것입니다.

처음에 이러한 개체를 하늘에 띄워 놓은 사람들은 적어도 하늘의 영역을 다스리는 맹금류로 ‘솔개’를 연상하여 공중을 섭렵하는 연(鳶)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속으로 애써 날고 싶었던 공간에 자신이 직접 창조해 놓은 물체를 하늘 높이 올려, 마음껏 조종을 하는 의식의 저변에서부터 한없는 성취감과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펄럭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 유년시절의 명절을 앞둔 추운 겨울날에는 하늘에 자신이 만든 연을 띄워 놓은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만난을 무릅쓰고 남의 대 밭 울타리를 무단으로 넘고, 어머님이나 누나들이 아끼던 실을 훔쳐 나만의 물체를 하늘에 날려보려고 무던히도 애쓰게 된 것입니다.

바람이 없던 날을 원망해 보기도 하면서 며칠이나 기다려 고대하던 바람이 불어오면 학교수업이 끝나기가 바쁘게 책가방을 팽개치고 미숙한 가오리연에 이어진 실타래를 들고 곳곳에 장애물이 있는 마당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하늘에 깔아 놓은 나의 작은 성취를 즐길 사이도 없이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한 가오리연이 공중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사정없이 아래로 처박히는 모습은 가슴 한쪽을 아예 까맣게 물들이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연이 추락하여 있음직한 곳을 향하여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가 보아, 손에 닿을 수 있는 안정된 장소에 있으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내 키의 몇 배나 되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하다 보면, 조바심을 치면서 갈퀴에 대막대기를 연결하여 끌어내려 보려고 애쓰는 처절함이 지금도 가슴에 모자이크처럼 남아 있습니다.

탱자나무 가시에 걸려있던 연과 그에 비하여 형편없이 약한 실로 이어진 나와의 인연이 혹여 떨어질까 노심초사 하면서 조심스레 당기는 순간 허망하게도 떨어져 나가는 상실감은 무어라 형언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은 여자 동창생의 집 울타리에 있던 대추나무(가시처럼 작은 가지들이 천방지축의 방향으로 뻗음)에 야속하게 걸려버린 나의 ‘애지중지’에 이어진 가느다란 실을 붙잡고 어차피 세게 당기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가볍게 당기면 백날을 당겨도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애쓰는 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대추가 하나 시름없이 떨어지면, 꼼짝없이 포로가 된 연을 쳐다보다가 땅에 떨어진 대추를 번갈아 쳐다보는 허전한 그 마음이 오죽이나 하였을까.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뇌리를 떠나지 않는 아쉬움은 어느 것보다 강력한 실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목적하는 실을 얻어야 한다는 일념아래 돌가루나 사기 그릇 가루, 심지어는 유리를 찧어 얻은 가루 등을 밥풀에 짓이겨 실에 바르고 말렸다가 야심차게 도전을 해 보았지만 결과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질긴 실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지나간 날들의 추억일 뿐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연실을 감는데 최대한으로 좋은 성능의 얼레를 얻기 위하여 굵은 철사나 좋은 판자를 찾아 곳곳을 누비던 기억들이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

녹 슬은 톱날을 사용하여 정말로 어렵사리 판자를 재단하여 못을 박고 화력이 좋은 연탄불에 철사를 꼽아 두었다가 벌겋게 달구어 얼레의 가운데 부분을 향하여 누르면 연기를 뿜어대며 구멍이 뻥 뚫리는 순간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통쾌한 기분으로 짜릿하였던 것입니다.

새로 만든 얼레에 자랑스럽게 실을 감는 기분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으로 그야말로 최고의 성취감을 만끽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에야 새삼스레 돌아보는 연을 날려 올리던 어른들의 깊은 속내는, 해마다 계속되는 고달픈 인생역정 중에서도 하늘에 띄워 놓은 물체를 영구히 소지하는 것보다, 몸의 일부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존재이긴 하더라도, 한해의 모든 액운을 그곳에 실어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대신 누구보다도 훌륭한 복덩이를 맞이하고 싶은 간절한 뜻으로 인연의 끈을 서둘러 잘라 내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기원전 400년경부터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연을 하늘에 날려 올리는 행사는, 기원전 200년경 중국의 송나라를 거쳐,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한신장군이 적을 무찌르는 무기로 사용하면서 사람들과는 다양한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신라시대에 김유신이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연에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달고 불을 붙여 하늘에 올려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았다는 일화가 있으며, 일본의 막부시대에는 연을 실용적으로 개발하여 실제로 사람이 타고 적진에 침투도 하고 화공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장면들이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 실감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연을 매개로 하여 새해가 시작되는 벽두부터 우리들 의식의 근저에서 하늘을 향하여 바라는 작고 소박한 꿈들을 어떻게 하든 축원하여 혹시라도 아낌없는 복을 받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인심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지고 형제나 동기간에도 애틋한 정들이 자꾸만 세월의 바람에 희석되어 가는 동안, 비록 허전할 정도로 지나버린 추억이나 빛바랜 사진으로 비추어지는 인연들에 대해서도, 연은 진실로 우리들 마음의 고향을 찾는 이정표가 될지도 모르며, 하늘에 깔아 놓은 사람의 인연 줄을 면면이 이어가는 질기고도 의미 있는 사랑의 가교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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