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박영동의 “세 월”
  • 기사등록 2011-08-04 16:02:59
기사수정
 
[전남인터넷신문] 이따금 현실이 막막하고 허전함이 밀려오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어깨를 맞대고 빈틈없이 서 있는 도시의 낡아버린 건물들이 양면으로 늘어선 피로한 거리를 하염없이 지나 바다가 보이는 항구에 이르면 비로소 마음이 열립니다.

어느 가수는 아름다운 모습에다 청아한 목소리를 보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합니다.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영혼들이 자신이 머금은 마음의 색깔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대변하는 항구를 보고 스스로의 감흥을 이야기 합니다.

한마디로 항구는 모든 사람들 삶의 편린들이 오래된 전시장처럼 어지러이 널려 있습니다.

망망한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여 단절된 인간의 길을 무한정 연장시키는 끄나풀은 다름 아닌 배입니다.

항구로 들어오는 배는 거친 세파를 이겨낸 풍상우로의 통증과 고단하였던 여행길을 마치고 잠시 날개를 접어 쉬어가는 갈매기와도 같이 약간의 여유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떠나가는 배는 바다를 향하는 도전의 기상과 편안하고 안락함으로부터 벗어나 다가오는 시련을 이겨내야만 하는 희망과 함께 숙명적으로 스며드는 아픔이 저려오기도 합니다.

거친 세파를 향해 떠가는 배는 육지에 남겨둔 미련과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이 허장성세의 뱃고동을 힘차게 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손바닥을 보일 듯 말듯이 손을 흔듭니다.

들어오는 배와 떠나가는 배들이 일으키는 파도는 촘촘하게 세워진 뱃전에 부딪히고 찰랑대는 물결이 부두에 부서지며 일으키는 거품들에는 문득 인생살이의 오만가지 상념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이세상의 모든 것들은 한곳에 머물러 안락함을 찾으려 할지라도 지나가는 바람과 구름 아니면, 보이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도도하게 바꾸는 시간이 그대로 두지를 않습니다.

발길을 돌려 바닷가 암벽을 마주하다 보면 얼마나 되는 오랜 시간동안 그침 없는 파도의 내습을 받았는지, 층을 달리하여 파여진 상흔들이 역연합니다.

그래도 바위는 누구를 붙잡고 자신의 아픈 과거를 발설하지 않고 비바람이 치든지 거친 눈발이 날려도 백년이나 천년이고 묵묵히 서 있을 뿐입니다.

거친 풍파에도 굳건한 기상을 잃어버리지 않는 모서리를 돌아서 가면 모래톱이 쌓여져 있는 백사장에 하염없이 넘실대는 파도의 군무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한 발걸음인지는 모르지만 파도는 파도대로 바위에 부딪혀 변색 하였는지 온몸에 파란 멍울을 달고 영원의 노래를 읊조리며, 바이올린의 활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밀려왔다 밀려가곤 합니다.

그사이 백사장 모래들과 부서진 조개껍질들은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산산이 분해된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며 스멀스멀 밀려듭니다.

사랑에 빠진 남녀는 신발이 물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백사장에 길고 긴 사랑의 유희를 발자국으로 남기는데, 흔적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염원과는 상관없이 무심한 파도는 두 사람의 사랑을 조금씩 지워 갑니다.

바닷가 갯벌을 끊어질 듯이 위태롭게 하여 섬과 섬을 이어가는 나무다리는 어느 날 그 존재의 의미를 거두어 갈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가냘픈 다리에 허리를 구부린 어부가 등에는 해풍에 변해버린 대바구니를 매고 힘겨운 발걸음으로 물이 쓸려 내려간 갯벌에 나아갑니다.

바다가 허락하는 촌음의 순간, 인간에게 건네주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부들의 발걸음이 언제까지나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는 길목에 해산물을 습득한 노옹의 웃음 머금은 얼굴에 깊이 파인 주름살에는 인고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노옹의 몇 개 남지 않은 이빨 사이로 텅 비어버린 공간은 평생 동안을 달래 온 애환과 설움, 고뇌가 대신 서려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일구어 왔던 다랑치 논들은 골프장의 개발에 휩쓸려 그토록 어렵사리 구축해 놓은 물길과 둔덕들을 뭉개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우마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넘어가던 고개에는 매일 같이 다른 도시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전기 자동차를 타고 농부보다도 더 분주하게 이동을 합니다.

그야말로 경치가 좋은 섬마을에 몇 집 남지 않은 주민들 사이에도 개발을 목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외지 사람들에게 땅을 팔아야 한다는 주장과, 여생을 조용히 살도록 외지인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갈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정을 한순간에 내동댕이쳐 서로 간에 고개 돌려 농사일을 따로 하기도 합니다.

곳곳마다 개발의 물결에 의하여 댐을 쌓으면 정들었던 고향마을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실향민이 생겨나게 됩니다.

고향마을을 아예 멀리 떠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아쉬움으로 부근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는 사람도 있습니다.

날이 가물어 댐의 물이 모두 빠져 바닥을 드러내 놓으면 지금은 몇 사람 남지 않은 이웃과 함께 정들었던 물속의 길을 따라 더듬어 폐허가 된 고향마을에서 지나간 날들의 추억을 더듬어도 봅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농협창고의 벽에는 지금도 붉은 글씨로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반공 방첩’의 글씨가 보여 처절하였던 동족상쟁의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무너져 내린 지붕과 깨진 기와 장에 귀를 대고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울로 이사를 간 이웃들의 소식을 묻기도 합니다.

지금은 소용도 없게 된 쟁기 쇠 조각이 떠나올 때 마당자리 모퉁이에 놓아둔 채로 마치 엊그제 마주한 것처럼 정답게 반기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사람과 물체들 간에 수없이 이루어졌던 교감들은 무아지경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인연의 끈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계절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수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봄이 되면 꽃과 나뭇잎을 피우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의 단풍이 들어 만산에 채색을 서둘러 황홀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그리하여 겨울이 오기 전에 한 해 동안 우여곡절을 지낸 인연의 끈들을 조용하게 내려놓고 바람 따라 대지를 뒹굴어 가다 이름 없는 계곡에 새로이 둥지를 틉니다.

대자연이 부리는 조화로 때로 산중턱에는 자욱한 안개를 피우기도 하고, 산꼭대기에는 구름으로 장식을 하여 모자를 씌우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이세상의 만물이 하나의 차별도 없이 나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눈발에 의하여 하나씩 덮여 나중에는 온통 하얀색으로 아득한 정취를 뿜어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저려오는 그리움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예전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인기가도를 달리던 꽃다운 나이의 유명 여가수들의 몸매가 한결같이 두꺼워 보이고 중후함이 엿보이는 것은 안정된 느낌과는 달리 또 다른 아쉬움에 다가서게 됩니다.

꿈같은 청춘 시절의 젊은 가슴에 불타는 정열을 일으키던 청순함을 애타게 찾아도 보지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고 무상한 날들이 총총히 가버린 지금 어찌할 것인가.

그럼에도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 표표히 떠가는 배에게 더 이상의 내일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남아있는 날들의 공연일자를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에 솟구치는 청춘의 향연 남은 한 조각을 달아 놓고, 시간의 역사를 싣고 떠가는 것이 우리들 모두의 덧없는 자화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5768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곡성 곡성세계장미축제 개장
  •  기사 이미지 김이강 서구청장,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참석
  •  기사 이미지 보성군, 보성의 소리를 세계의 소리로! 제26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시상
전남오픈마켓 메인 왼쪽 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