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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애중(愛重)
  • 기사등록 2011-06-16 16:10:08
  • 수정 2014-12-04 17: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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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양초는 스스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자신의 몸을 태워 불을 밝혀 어둠을 밀어내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사이 어둠에서 움직이는 물체들은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까지 타버린 뒤에는 깊고 깊은 어둠이 온다 할지라도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태워버린 존재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상대방에게 헌신하다보면 양초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흔하다 싶기도 한 물고기로 "망둥어"라고 있습니다.

이는 일년생으로 초봄에 태어나 바다를 누비다 늦가을이 되면 몸에 수도 없는 알을 품고 갯벌에 들어 고요히 최후를 맞이합니다.

새로이 태어나는 생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정작 모체는 부화된 새끼들이 어느 정도는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먹이로 제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망둥어의 세대 간 연명이 촛불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태어난 곳을 향하여 수천 킬로미터의 바다여행을 통하여 온몸이 상하다 못해 갈래갈래 찢어질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아 산란하고 수정하는 성스런 행위를 치르는 연어의 일생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식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갈가리 찢어 먹도록 허락을 하는 가시고기의 슬픈 사연 또한 이미 책으로 출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강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강가에 있는 억새풀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키우는 “개개비”는 여름날 비가 와서 범람하게 되면 자식을 구하려고 폭풍우가 쏟아지는 비바람 속에서도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곤 하는데, 이 깊고 깊은 사랑의 애중은 모든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들의 저변에 깊숙하게 깔린 생존의 법칙인 것입니다.

하지만 장어가 어떻게 하여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며 생존을 하고 새끼를 부화하고 세대 간의 끊임없는 공전을 거듭해 가는지는 아직도 인간에게 미지의 세계가 되고 있습니다.

성년의 장어가 산란을 하는지 배속에서 부화를 시켜 새끼로 낳아 번식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민물 장어의 새끼를 부화시키거나 이를 기르는데 성공하였다는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은 성년의 민물 장어가 태평양의 특수한 환경을 찾아 수천 킬로의 여행을 마치고 우여곡절을 거쳐 새끼를 번식하는데, 실처럼 가늘고 투명한 새끼들은 자신의 어미와는 분명히 다른 개체임에도 부모가 달려왔던 길을 인식하여 되돌아 수천 킬로의 여행을 하여 부모가 떠나온 자리로 회귀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연어의 회귀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본능으로 보입니다.

때가 되면 서 남해안의 바다에 퍼져있는 실처럼 연약한 실뱀장어를 잡으려고 뗏목과 같은 시설을 하여 부부가 한 팀이 되어 바다위에서 숙식을 하며 그물을 걷어 올려 소중하게 모은 새끼들이 특히 일본인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양식장어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성년의 장어가 태평양을 향하는 동안 전혀 음식을 먹지 않고서도 지칠 줄 모르고 새끼를 번식시키거나, 그 연약한 새끼 뱀장어가 만난을 극복하고 수천 킬로의 거리를 생존해가는 끈질긴 힘의 원동력에 감복하여 자양 강장식품의 원조로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그 힘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생존의 과정 자체가 부모가 내리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토록 번성하여 온 세상의 모든 문명을 키워온 것은 세대 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2011. 6. 9. ‘헌혈의 집 충북대 센터’에서 헌혈에 참여를 하였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쳐 뇌사 상태가 되었던 학생이 2011. 6. 15. 10:58경 뇌사 판정을 받으면서 가족의 뜻에 따라 자신의 장기를 다섯 사람에게 나누어 새로운 삶을 베풀고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헌혈에 참여를 하였던 당사자의 뜻이 애초에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었고, 뇌사상태의 당사자 장기를 나누는 가족의 뜻도 당사자의 의사표시 연장선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따뜻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가신분의 여생이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따뜻하게 발현되고, 그 마음이 계속하여 어려운 사람들의 가슴에 물수제비가 일으키는 파문처럼 한없이 퍼져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본능이 순간적으로 표출 되어 자신의 생명과 몸을 버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우리 사는 세상의 미래가 근본적으로 밝은 곳에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도쿄의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하여 달리는 열차를 향하여 뛰어들었던 고 이 수현씨의 감동적인 이야기나 2003. 12월 차디찬 남극에서 조난을 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하여 위험을 마다지 않고 구조에 나섰다가 순절한 전 재규 연구원의 희생정신이 상당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은 무관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2005. 11월 지하철 6호선 안암역에서 당시 네 살배기였던 꼬마가 지하선로 쪽으로 떨어진 순간에 굉음을 내고 전동차가 역 구내로 들어오고 아이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누군가 단 3초 만에 뛰어들어 아이를 번개처럼 낚아 채 돌아가는 화면은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도 하였지만, 전 국민의 막혀있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쾌거였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주인공은 서울 디지털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 대현 군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 따뜻한 사랑을 실천한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제가 1985. 11월 초순경부터 약 1년여 동안 나주에서 해남읍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을 하였는데, 86년도
여름에 태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잦아 가로수가 뽑히고 길이 물살에 유실되는 등 위험한 길을 왕래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해 옆 사무실에 근무를 하였던 한분도 버스를 타고 가다 전복이 되어 운명을 달리 하였던 적도 있었지만, 저로서는 달리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계속하여 곡예를 하면서 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와서 지금처럼 교통편이 넉넉하지도 않아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아침 출근길에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무작정 앞으로 전진 하는 운전사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가는데 영암 ‘풀치재,를 무사히 잘 넘어 해남군 옥천면에 이르렀을 때 정말로 큰 미루나무가 넘어져 도로를 막아버린 것입니다.

도로의 옆 시뻘건 황토 물은 마치 성난 사자와도 같이 도로를 넘어 반대편으로 흐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은 뒤집어진 채 아예 쓰나마나 옷이 젖기는 매한가지로 정지한 채 막연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책을 싼 책보를 어깨에서 배로 띠처럼 두르고 거대한 나무의 끝을 붙잡고 꼼작도 하지 않는 나무에 혼자 매달려 계속하여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보다 못한 제가 운전사에게 문을 열라고 주문하고 비바람 속으로 뛰어나가 어린 초등생과 같이 나뭇가지를 잡아당겼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데, 버스에서 계속하여 사람이 내리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이더니 힘을 합쳐 당기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 할 것으로 여겼던 나무가 초등학생의 불타는 사랑의 애중에 의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로 모아, 결국에는 중장비가 해결하여야 할 일을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영웅이었던 “잔다르크”도 이렇게 하여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닌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이름을 모르는 초등학생의 용감한 한순간이 나의 기억 속에서 수시로 요동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초등학생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깨어있는 선도적인 의식을 갖춘 사람들이 계속하여 뒤를 이어간다면 결코 우리나라의 장래가 어둡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그동안 셀 수 없을 만큼의 위기를 극복하고 길고도 고단한 역사를 당당하게 꾸려온 원동력이 느껴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불타는 우리의 가없는 사랑이 미치는 미래의 촛불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에서부터 타오르고 있던 것입니다.

그때의 초등학생은 지금은 약 35세의 건전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어디에선가 또 다른 촛불을 켜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끊이지 않고 깨어나는 의식의 창을 가진 대한민국의 동량들이 쉬지 않고 대를 이루어 자라나 준다면 한때의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민족의 찬란한 역사는 더욱 빛나게 될 것으로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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