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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의 “다리상한 구구 새”
  • 기사등록 2011-04-13 17:18:16
  • 수정 2014-12-04 17: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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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비둘기는 둥지 속에 들어서 상대방과 사랑을 나누거나 상대를 애달프게 부르는 경우 “구구구”를 연발하기도 합니다.

“구구 새”는 제가 비둘기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궁금하여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구구 새”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평화와 사랑의 상징으로 비둘기가 바로 마음속에서 “구구 새”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30대 중반 무렵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린 처형이 남긴 조카가 정신적인 아픔에 허덕이면서도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의무경찰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잘 지내주기를 바라면서 가슴 졸이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크게 다쳐 경찰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하였습니다.

밤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기차는 지금처럼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길고 긴 밤을 자다가 깨어 창밖을 보며 어디쯤인가를 가늠하고, 다시 선잠을 청하면서 온 밤을 다 소진해서야 겨우 서울 땅에 도착하는 큰맘을 먹어야 가는 여행길 이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엉치등뼈가 깨질 정도의 부상을 당하였다 들었는데 불구를 면할 수 있는 것인지, 얼마나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를 걱정하면서 가는 여행은 참으로 지루하고 길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어둠속을 헤치며 걸어가는 당시 기억으로는 가을이 무르익어 밤바람은 상당이 싸늘하게 볼을 때리는 시절이었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길을 택시를 타고 잠실 운동장 부근으로 얼마나 달렸던지 여명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순간 목적지 부근이라는 말을 듣고 택시에서 내렸던 것입니다.

어느 틈에 슬그머니 어둠이 가시고 있었으며,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고, 플라타너스 나무의 이파리는 떨어져 거리에 이리저리 구르고 나무아래 벤치에는 아침 이슬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는데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의 발걸음 사이를 정말로 바쁘게 다니는 생명체에 눈길이 멎는 순간 짜릿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심하게 쫒아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겨우 안정된 상태로 몇 발짝 걸으면 금방 사람이 지나가고, 날아올랐다 내려 몇 발짝 더 걸으면 발길을 떼기가 무섭게 차량이 지나가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새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거리에 먹을거리가 널려 있는 것도 아니련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자세로 어떻게 하여 하루를 지탱하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그 새들 중 유독 두 다리로도 힘들었을 터인데도 누군가의 잔인한 공격에 의하여 그나마 한 다리를 잃은 가엾은 새 한 마리를 목격하였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한 다리의 구구 새는 다소 움직임이 불안 하였다 할지라도 그래도 맑은 눈망울과 기품 있는 털을 그런대로 다듬어 도시의 일원으로 다른 새들과 다름없이 부지런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길을 가면서도 다리상한 새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뜨거운 격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라 발길이 자꾸만 늦어지면서 조카를 만나는 순간까지 아무런 정신이 없어 마치 놀란 시골 토끼 취급을 받으면서 조여사의 뒤를 끌려가는 형국이 되고 만 것입니다.

시골에서 살다 올라온 도시의 거리는 정말로 복잡하였는데 조카에게 전해 줄 보약꾸러미 조차 챙겨 든 무거운 몸으로 계속하여 뒤 돌아 보는 한심한 사람을 향해 조 여사는 큰소리로 길을 재촉하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다리상한 구구 새의 모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고 오히려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고단한 삶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더욱 가슴속에 선명한 영상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의 무책임한 돌 팔매질, 아니면 난폭한 운전으로 한 다리를 다쳐 나머지 한 다리로 이토록 거친 세파를 헤치고 날마다의 삶을 이어가는 가냘픈 새로부터 이 세상에 상처 받아 고통 받는 영혼들을 수시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상당 기간이 흘러갔음에도 다리상한 구구 새를 잊지 못하고 어느 날인가 아침은 멀고 밤이 깊어 잠 못 이루는 새벽 3시경, 문제의 구구 새에 대한 상념을 신들린 듯 마분지에 써내려 푸념 한편으로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던 한편의 노래를 누군가에게 통째로 건네 나의 뜻이 전달되어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좋은 결과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그것은 나의 소망이었을 뿐 뜨거운 감흥의 산물은 우여곡절을 거쳐 오히려 내 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입니다.

스스로의 능력을 무한히 키워 다리상한 구구 새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지만 인간의 힘은 참으로 미약하였고, 현실의 벽은 마치 거대한 암반을 대하듯 높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오히려 다리상한 구구 새를 도와주는 형국이 아니라 무질서한 격정의 소용돌이에서 왜곡되고 무너지면서 스스로 다리상한 구구 새의 모습을 닮아 가면서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조용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덧없는 세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세월의 마술 속에 열기도 식어버린 화로를 바라보는 심정은 이제는 정말 어떻게 하여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고대사를 자기들 마음에로 왜곡하여 조상들 삶의 때가 묻어있는 옛 강토에 대하여 지배의 야욕을 불태우는 중국의 욕심과, 틈만 나면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일본의 틈새에서 함께 뭉쳐 있어도 살아가기 힘드는 일임에도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자신들의 주장만 되풀이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은 마치 다리상한 구구 새를 보는 것과 같이 답답할 뿐입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하나뿐인 분단국의 오명을 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갈라진 국토에서 지방자치의 순수한 뜻을 살려 자유롭고 선의적인 경쟁을 통한 발전을 다투는 것이 아닌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지역적인 감정은 더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각 지역 간의 발전에 있어 상당한 편차를 느끼는 현실은 그 감정의 골을 깊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후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긴 하였다지만 자신만의 이익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틈만 나면 국론이 극단적인 방향 양편으로 갈리는 우리의 정치 현실또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벌어져 대다수의 서민들은 빚더미에 눌러 앉아 이자 부담으로 고통을 당하다 결국에 파산을 맞으며 부모와 자식과 부부간의 갈등의 증폭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계층 간의 불화는 차세대의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간의 불화로 급기야는 가정의 울타리가 무너져 가는 현실은 더욱 우리의 가슴을 매이게 합니다.

애써 설득하려 해도 자신만의 주장으로 가득 채워 아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조금만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납득이 갈 것으로 보이는데도 갈등과 증오심을 증폭 시켜, 정작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상대방을 마치 전생의 원수로 대하는 사람들의 아집은 대책이 없어 가슴앓이만 할 뿐입니다.

마음에 병이 들어 술로 지새다가 정작 찾아드는 육신의 질병에 의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저토록 아픈 마음으로 생을 마감하면 그 한을 어디에서 풀 것인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의 파동으로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 짐승들을 살 처분 해놓고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것처럼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 또한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말 못하는 소나 돼지도 배가 고프면 큰소리로 울어 주인에게 먹을 것을 달라 한다는데 주인이 동네 어귀에 들어오면 벌써 그 낌새를 알고 주인은 누구의 목소리 인지를 알아차린다고 합니다.

어차피 우리 사는 세상이 사람의 뜻대로 움직인다고는 하더라도 인간과 짐승과 초목들은 모두 동반자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수도 없는 생명들을 산채로 매장을 하였다는 것은 그 연유가 어디에 있든지 비극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어쩌면 거친 세상을 한 다리로 지탱하는 다리상한 구구 새 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어딘가 한곳이 부족한 다리상한 구구 새 들에게는 빈 공간을 채워야 할 아낌없는 사랑이 필요할 것입니다.

수십 년 전 잠실운동장 부근에서 목격한 다리 상한 한 마리의 구구 새가 잠실 운동장 처마 끝에 무지개 일면 또 한 마리의 다리상한 구구 새를 끌어안고 힘차게 비상하며 환희의 노래를 불러대는 장면을 꿈꾸어 왔는데 외롭고 고독한 영혼들의 힘찬 깨달음을 바라는 마음이 실린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어두운 곳에 산재하는 아픔들이 새로운 날들의 아침을 맞아 드디어 희망의 나래를 펴고 오해로 얽혀버린 안타까운 현상들이 하루라도 빨리 해소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고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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