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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 기사등록 2011-04-06 16:26:04
  • 수정 2014-12-04 1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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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1905. 11. 17.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의 하야시 곤스케에 의하여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날 이천만 동포를 향하여 장지연 선생님은 신문 사설을 통하여 4천년 강토와 500년 사직이 왜놈의 손으로 넘어간 사실에 대하여 한탄하며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격문을 게재 하였습니다.

지금도 위 격문을 대하다 보면 무능하고 힘없는 왕조와 할 말 잃은 이천만 동포들의 원통함이 뼈 속에 절절하게 배어있는 것으로서 시공을 초월한 채 가슴 떨리는 역사의 현장으로 홀린 듯 다가서게 됩니다.

동양 삼국이라 일컫는 한. 중 .일은 수천 년에 걸쳐 서로 간에 동지로 적으로 때와 경우에 따라 수시로 입장을 바꾸어가며 수없는 질곡과 해협을 넘나드는 어렵고 고단한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광활한 만주벌판과 중원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는 항상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서로 간에 피를 흘리며 밀고 당기는 공방전이 끝없이 되풀이 되곤 하였습니다.

한반도 내에서도 때로는 강물에 거품이 거칠게 일어났다 사라지기도 하듯 수없는 왕조가 태동하였다 멸망의 길을 걷고 또다시 부흥하였다 사라지는 흥망성쇠의 공전을 거듭하였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왜”는 한반도 남쪽 어딘가의 부족국가로 존재하면서 수시로 신라를 침범하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왕이 말을 타고 응징을 하매, 점점 그 기반이 약해지면서 설 땅을 잃고 가솔들을 이끌고 반도를 떠나 망망한 대해로 나서 일본열도로 이주를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왜”는 삼국사기 등 한반도 고대사에서 100여년 동안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추측컨대 “왜”의 일부는 나주평야를 중심으로 하는 족장세력으로 옹관묘로 장례를 치르는 부족으로 존재하였다

백제와의 절충으로 지금의 광양부근(추정)에 근거하면서 자꾸만 신라의 영역을 침범하다가 세력이 약화돼 잔존 세력의 2차 유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일본 열도에서 출토되고 있는 옹관묘의 주인들은 한반도에 존재하였던 나주에서 출토되는 옹관묘 세력의 후손이 되는 셈이고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는 당나라에 있던 “신라방”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왜가 일본열도로 건너간 이후에도 반도와 대륙에 자신들의 근거지를 마련하려고 호시탐탐 허점을 노렸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 망령이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원숭이 년, 월, 일, 시에 태어났다 하며, 출신 성분과 성장과정에 대한 자료가 불분명 함)에 의하여 되 살아 나고, 태평양 전쟁 때 군국주의에 의하여 부활 되었다가 패망의 길을 걸은 바 있습니다.

오늘날의 부를 누리는 일본인들에게는 열도로 이주하여 제 각각의 세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약 100여년에 걸쳐서 피를 부르는 전국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논리는 생존할 수 있으면 무슨 짓이든지 못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도덕성 파탄의 시대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을 하였던 야마오카 소하치(본명:야마노우치 쇼조)가 장장 17년간의 인생을 쏟아 완성하였으며, 전쟁에 패배한 일본 국민들을 허탈감에서 해방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소설에 나타난 인간상들은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 간 적의 아들 그나마 빼앗긴 아내의 몸을 빌어 태어난 사내를 사위로 삼으려는 각박한상황에서 아들의 피를 토하는 반대를 물리치는데 교묘한 술수를 씁니다.

당시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는 모르지만 혼인 행렬이 세 갈래로 가는데 이를 탈취하려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느 행렬이 진짜인지를 묻자 아무 말도 없이 “中”을 썼는데 정작 탈취하여 보니 가짜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고야 마는 일본인들의 매정한 성격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록 부자관계 일지라도 자신의 갈 길에 방해가 된다면 염두에 두지 않는 사무라이 의식 구조인 것입니다.

일례를 들면 가난한 사무라이의 아들이 며칠을 굶고 떡 장사로 부터 떡을 훔쳐 먹었다는 누명을 쓰게 되자 격분한 사무라이가 그 자리에서 아들의 배를 갈라보고 떡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가차 없이 떡 장사의 목을 베는 것입니다.

명예를 중히 여기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5. 3. 1. 주한일본대사는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가 틀림없는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는 망언을 하였으며, 2005. 3. 16.에는 시마네 현 의회에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선언하는 조례를 의결하였습니다.

35년간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온갖 수탈과 만행을 저질렀던 자들이 참회의 눈물 한 방울이나 일말의 가책도 없는 망령된 행동을 서슴없이 해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강간한 여자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며 그 집마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인간성 파탄의 탕아들이 벌이는 장송곡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왜인들의 망령이 살아날 때에는 언제나 반도의 국론이 분열되어 있었고, 사분오열된 어지러운 형국이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독일이 국토의 반을 잘라 사죄하는 것과는 달리 만고의 세월동안 살아갈 우리의 터전을 35년간 유린한 것도 부족하여 자신들의 허리를 잘라야 할 시점에 오히려 우리의 강토를 둘로 분할하는 천인공노할 공작을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채 오년이 지나갈 무렵 동족이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는 이념의 제물로 삼고, 이를 미끼로 또다시 오늘날의 부를 챙겨 호의호식 하면서, 정작 피해 당사자인 우리는 지금도 국토 분단의 아픔이 뼈에 사무쳤거늘, 처절하였던 피 값에 대한 보상이나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일말의 책임도 없는 몰지각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2011. 3. 11경 최대의 지진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연민으로 구호활동과 심지어 전 국민 모금운동을 하여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오히려 남의 땅을 빼앗을 모의를 하고 있었다 하니, 과연 하늘의 심판이 누구에게 떨어질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 될 것입니다.

내 가슴의 아픔이 쓰릴 때 자신들이 뿌렸던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하여 반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철면피의 행동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면 앞으로 닥칠 재앙과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매함에서 깨어나 이번 불행이 지구대이변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주변국에 무릎을 꿇고 지난날의 잘못을 진실로 반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태평양 연안의 소수민족들이나 아세안민족에게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넘겨주고도 한때의 영화를 유지하였다면 벚꽃의 짧다한 순간의 축제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자각하고 신중한 대응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 지진으로 세계인의 가슴이 아직도 따뜻하다는 것을 보았으면,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게을리 하여 태평양의 수중 바위에 시멘트를 부어 급조한 부표로 중국과의 영토분쟁이나 일삼고, 북으로는 러시아와 다투고, 기회만 있으면 독도를 노리는 끝없는 탐욕의 끝은 조용히 바다 속에 가라앉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를 같이 이겨내야 하는 동반자 의식을 회복하여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정중하게 내밀어야 하는 시점에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면 마치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징검다리에서 물고 있던 고기를 오히려 물속으로 놓치는 어리석은 견공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에 의하여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이 지난날의 과오를 묻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는 순간에도 독수의 칼날을 갈면서 왜곡의 역사를 펴는 모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가오는 세상의 하늘을 같이 보고 살 수 있게 될는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인 것입니다.

과연 일본에 인류의 양심을 대변하는 세력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하늘의 심판을 유예 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의 의인만이라도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될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드리는 말씀이 일본인을 책망하거나 비방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귀를 씻고 정중한 마음으로 경청한다면 입에 쓴 각성제가 될 것입니다.

마음의 창을 열어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순리를 따르는 순간에야 지구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온갖 재앙을 극복한 참으로 평화로운 세상은 다가오는 여명과 함께 지그시 펼쳐질 것으로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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