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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동서양 종교의 공통적인 모티프 - 서울시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 감상 교실’ 강사, 서울대 미학과
  • 기사등록 2011-01-13 08: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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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종교의 공통적인 주요 모티프로서의 나무

팔을 들고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여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는 작은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부조의 도상학적인 열쇠가 됩니다. 인도의 왕자 싯다르타의 탄생이야기를 아는 관람자라면, 이 여인이 부처의 어머니 마야부인임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 탄생이야기는 불교 경전 주해서나 구전 설화 등에 등장하죠. 부처는 어머니가 정원의 나무 밑에 서 있을 때 그녀의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싯다르타를 받고 있는 남성과 주전자를 든 여인은 그녀의 출산을 돕는 사람들이죠. 나머지 인물들도 새로 탄생한 왕자의 신성함을 알아보고 기도를 하고 있으며, 그들 역시 두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상의 인물들입니다.

이 부조의 좀 더 심층적인 의미를 알아본다면, 이것은 A. D.2-3세기 간다라 미술로서 상당히 많이 만들어지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 창시자의 탄생과 새로운 종교의 시작을 제시함과 동시에, 또한 중요한 미래를 예시하고 있죠. 이 경이로운 순간 가장 중요한 모티프는 바로 나무입니다. 마야 부인은 나무 아래서 불교의 창시자를 낳았고, 그는 또한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게 되죠.
 
그리스도 ‘성탄’에 관한 기본적인 텍스트는 루가복음서입니다. 그에 따르면 마리아는 나이든 요셉과 결혼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의 노인은 요셉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관에 방이 없어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출산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헛간과 같은 곳은 마구간일 것입니다.

또한 이 그림의 상단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부분 역시 루가복음서의 다음과 같은 구절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 왔다.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2장 10절)를 통해서 오른쪽의 남자들은 양떼를 지키는 목자이고, 헛간 위 천사들은 목자에게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알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루가복음서에 의한 해석만으로는 밝혀지지 않는 좀 더 심층적인 의미를 탐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복잡한 이 그림은 크게 두 부분, 즉 중앙과 왼편 하단의 헛간 내부와 상단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외부 풍경이 결합된 것인데, 전자에서는 “성탄”, 후자에서는 “목자에게 알림”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황소는 마리아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지만, 당나귀는 졸고 있죠. 이는 황소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보는 현명한 동물인 반면, 당나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는 무지한 동물임을 상징합니다. 성서에서 졸고 있다는 것은 무지함, 더 나아가 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 수난 전,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면서 제자들에게도 자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고 했지만, 예수가 몇 번을 내려와 봐도 제자들은 졸고 있죠. 또한 십자가 수난 후 다시 부활한 예수가 자신의 무덤을 떠나는 순간, 그 무덤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 역시 졸고 있습니다.

그 주제를 다룬 그림인 지오토의 <나에게 손대지 말라>에 등장하는 졸고 있는 병사들은 <성탄>의 당나귀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병사들과 당나귀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의미를 모르는 무지와 죄를 상징하지요.
 
하단 중앙에 흰색 양은 검은색 염소와 함께 있기 때문에 상징이 되며,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성서에서 ‘오른쪽’, ‘흰색’, ‘빛’은 ‘선’, ‘구원’, ‘앎’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것이고 ‘왼쪽’, ‘검은색’, ‘어둠’은 ‘악’, ‘죄’, ‘무지’를 의미하는 부정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오토는 ‘죄’와 ‘악’을 상징하는 염소는 검은색으로, ‘구원’과 ‘선’을 상징하는 양은 흰색으로 그렸죠.

그런데, 왼쪽 하단에 있는 요셉은 왜 졸고 있을까요? 이는 앞서 졸고 있다는 의미와는 다른, 종교적인 관례에 따라 그려진 것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실제 아버지는 ‘신’이지 요셉이 아니기 때문에 속세의 아버지 요셉은 잠이 드는 것으로 이 사건에서 상징적으로 물러나 있는 것입니다.

<성탄>에 나오는 헛간과 바위라는 배경은 예수탄생의 장면임과 동시에 이들이 미래에 가지게 될 의미도 예시하고 있습니다. 좀 더 심층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목재는 십자가 나무를, 바위는 교회건물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내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헛간과 바위, 즉 나무와 돌은 건축적인 은유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종교의 기초를 세우게 되고 나무 십자가는 그 중심 상징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우게 될 바위는 찬송가 가사처럼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만세 반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은유들은 곧 이후의 일을 계시하는 기독교적 도상의 관례가 되었죠. 지금까지 살펴 본대로 동양의 종교인 불교와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의 창시자의 성스러운 탄생은 모두 공통적으로 ‘나무’라는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서구에서처럼 인도 종교에서도 중요한 상징입니다.

불교가 동양을 휩쓸기 오래 전, 특히 인도에서는 나무 숭배가 성행했고 그것은 초기 지중해 문화에도 널리 퍼졌지요. 나무는 또한 기독교의 중요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인류에게 있어서 ‘실락원’을 초래한 ‘선악과’를 생산했고, 예수는 다시 십자가 나무를 통해 인류의 ‘타락’을 속죄했으니까요. 이상과 같이 도상학적인 해석은 하나의 텍스트로부터 연관된 여러 자료들을 통해 미술작품에 대한 좀 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합니다. 동서양 종교의 공통적인 모티프로서의 ‘나무’와 같이 인간 정신의 보편성까지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도상학적인 해석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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