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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맛은 오늘의 질문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 기사등록 2026-06-30 09: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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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우리는 흔히 전통을 과거에 남겨진 유산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는 박물관 진열장에 고정된 채 머무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역사란 현재의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칠게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에 더없이 적합한 식재료다. 한때 서남해안 갯벌에서는 이맘때가 되면 작은 칠게를 잡아 장을 담그고 젓갈을 만들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칠게장은 평범한 밥반찬이면서도 계절을 저장하는 지혜였고, 공동체의 밥상을 이어온 음식이었다. 그러나 식생활이 바뀌고 지역 음식문화가 단절되면서 칠게는 어느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차 멀어졌다.

  

그런 칠게가 국제 슬로푸드 운동의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맛의 방주'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목록이 아니라,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식재료와 음식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세계적인 문화 프로젝트다. 토종성과 지역성, 역사성과 전통성, 생태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두루 갖춘 칠게는 그 자체로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상징하는 소중한 식문화 자산이다.

  

칠게장을 담그는 과정 또한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 발효문화의 본질을 보여준다. 손질한 칠게에 간장과 다시마 우린 물, 마늘과 생강, 대파와 양파, 찹쌀풀 등을 더해 장물을 만들고 오랜 시간 숙성시키는 과정은 기다림이 빚어내는 시간의 맛이다. 그렇게 완성된 칠게장은 밥도둑이라 불리는 저장음식이 되고, 다시 숙성 과정을 거친 칠게는 깊은 풍미의 젓갈로 거듭난다.

  

슬로푸드한국협회 담양지부는 지난 6월 28일 이러한 전통 식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전통 칠게장·칠게젓 맛워크숍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단순히 옛 음식을 만들어보는 체험에 머물지 않았다. 잊혀가는 지역의 맛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어내고, 전통을 미래와 연결하는 문화적 실천이자 해석의 장이었다.

  

참가자들은 칠게의 맛을 음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의 갯벌 생태와 발효문화, 그리고 사라져가는 식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지 함께 고민했다. 그래서 이번 워크숍은 '맛보는 행사'를 넘어 '해석하는 행사'라는 의미를 지녔다.

  

슬로푸드한국협회 담양지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칠게를 밥상 위에서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일은 미래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 바 있다. 오래된 음식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대상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전해야 할 문화자산이다. 전통은 과거를 그대로 반복할 때가 아니라,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삶 속에서 이어갈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슬로푸드 담양지부가 내세우는 "혼자 하면 일, 함께하면 놀이"라는 정신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 일은 무겁고 어려운 보존 활동만이 아니다. 함께 만들고, 함께 맛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즐거운 문화가 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전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 기억을 담고, 공동체를 잇고,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전하는 언어다. 작은 칠게 한 마리에는 갯벌과 계절, 어머니들의 손맛, 그리고 한 지역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옛맛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오늘 다시 질문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눌 때 전통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 숨 쉬며, 미래를 향해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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