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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준비하는 면역 음식, ‘꿩 대신 닭’의 과학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전남도립대학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6-03-05 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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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설과 보름이 지났다. 햇볕이 화사해지면서 봄기운이 완연해 보이지만, 공기 속에는 아직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을 찾았을 때였다. 제를 마친 뒤 마을 어귀 식당에서는 떡국을 내왔다. 국물 속에는 닭고기가 들어 있었는데, 설날 아침에 흔히 먹어 왔던 떡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달라진 것은 달력의 날짜뿐이었다. 정월의 떡국이 여전히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반가웠다.

 

우리 풍습에는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 전통이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 음식이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상징적인 음식이다. 그러나 떡국은 단순한 상징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음력 정월의 찬 기운 속에서 먹는 떡국,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닭장국 한 그릇은 떨어진 면역력을 깨워 몸을 덥히고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토속적인 치유 음식이기도 하다.

 

설은 한 해의 기운이 막 움트는 시간이다. 겨울의 끝자락, 땅은 여전히 얼어 있지만 그 속에서는 이미 봄을 준비하는 미생물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들이 유기물을 분해하며 다음 계절의 생태를 준비하고 있다. 사람의 몸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겪는다. 외부의 찬 공기와 실내 온도 차가 반복되는 이 시기에는 면역력이 흔들리기 쉽다. 감기와 호흡기 질환이 잦아지는 것도 바로 이런 계절적 환경과 관련이 있다.

 

정월에 ‘꿩 대신 닭’이라 하여 닭장국을 끓여 먹은 풍습은 단순한 대체 식재의 선택이 아니었다. 꿩이 귀하던 시절, 닭으로 대신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속에는 계절의 생리적 요구에 대한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다. 닭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을 지닌 식품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겨울 끝자락의 허해진 몸을 보충하는 데 적합한 재료였다.

 

닭장은 닭을 뼈째 잘게 토막 내 오래 고아 만든다. 국물에는 골수에서 우러난 깊은 맛이 배어 있고, 몸을 서서히 덥히는 힘이 담겨 있다. 여기에 해묵은 씨간장과 마늘, 찹쌀을 더해 오래 달이면 발효에서 비롯된 아미노산과 유기산이 어우러져 깊은 감칠맛을 낸다. 이런 성분들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돕고, 결과적으로 면역력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저장을 위해 시작된 조리법은 자연 발효와 숙성의 원리를 품은 생활 과학이었다. 차가운 광 바닥의 장단지에서 천천히 숙성된 닭장으로 떡국을 끓이던 어머니의 손길은 겨울 토양의 생태와 닮아 있다. 막걸리로 비린내를 잡고, 장으로 깊이를 더하던 과정 또한 발효의 지혜였다.

 

얼어붙은 흙 아래에서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며 다음 계절을 준비하듯, 장 속의 미생물 역시 단백질을 분해해 우리 몸이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바꾼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물은 단순히 속을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돕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닭장국은 보양식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 어려운, 생태와 발효가 어우러진 치유의 국물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전통 항아리에서 발효한 발효현미슬러리와 흑초의 생리활성과 분자유전학적 기전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항아리 발효 환경에서 증식한 토착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기능성 대사산물이 세포 신호 전달과 면역 조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왔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우리 전통 음식이 단순한 향토 식문화에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한 건강 식품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정월의 닭장국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새해 아침 떡국과 함께 올랐던 닭장 한 국자에는 가족의 안녕과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맞닿는 시간에 따뜻한 국물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은 공동체의 기억이기도 했다.

 

면역력이 곧 생존력이 되는 계절이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몸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온 우리 조상의 식생활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월의 떡국과 닭장국은 과거의 풍습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의 몸을 돌보고 내일의 건강을 준비하는 토속 발효 음식의 지혜이다. 정월의 닭장국은 추억 속 음식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몸을 살리는 현재진행형 건강식이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6. 오래된 생활 발효, 고문헌 속 식초와 수치.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3).

곽경자. 2026. 연산오계, 토종 유전자와 생태산업의 길.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2).

곽경자. 2026. 구황작물 메밀, 전통 발효가 빚은 설날의 메밀묵.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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