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민족의 대명절 설을 앞두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는 관성처럼 도시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향한다.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수 시간을 보내고, 평소보다 고된 이동 과정을 감내하면서도 우리가 기어코 고향 땅을 밟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일가친척을 만나는 관습적 의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현대 사회가 앗아간 ‘정서적 회복’과 ‘생명력의 확인’이라는 본능적 이끌림에 가깝다.
최근 현대인의 지친 심신을 달래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치유농업(Agro-healing)’은 바로 이 점에서 설 명절의 고향과 깊게 맞닿아 있다. 치유농업이란 농업·농촌 자원이나 이와 관련된 활동을 통해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건강을 도모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우리가 설날 고향에서 느끼는 막연한 평온함의 실체는 사실 국토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거대한 ‘치유농업적 공간’이 주는 위로였던 셈이다.
고향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완벽한 치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치유농업의 핵심은 ‘생명체와의 교감’과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데 있는데, 설 명절 우리가 마주하는 농촌의 풍경은 그 자체로 훌륭한 치유의 매개체가 된다. 겨울날의 빛바랜 논밭, 마을 어귀를 지키는 당산나무,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도시의 수직적이고 차가운 시멘트 벽에 지친 우리의 시신경을 이완시킨다.
여기에 명절 음식의 고소한 냄새와 시골 특유의 흙내음이 더해지면 뇌의 변연계가 자극되어 잊고 있던 유년의 행복한 기억을 소환하는 ‘프루스트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감각적 자극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심리적 안정감을 극대화한다. 또한, 고향은 ‘사회적 원예’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치유농업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지지는 고독한 개인에게 강력한 심리적 안전망을 제공하는데, 명절에 이루어지는 가족 공동체와의 재회는 바로 이 안전망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과거의 농업이 얼마나 많은 수확물을 냈느냐는 ‘생산성’에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치유농업과 명절의 고향은 ‘과정’과 ‘관계’에 집중한다. 부모님이 소중히 가꿔온 텃밭의 마른 채소를 살피거나, 추위를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식물들을 마주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깨우친다.
이처럼 치유농업의 공간 안에서 인간은 단순한 관찰자에 머물지 않는다. 흙을 밟고 자연의 속도에 발을 맞추며, 인간 또한 대지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 치유는 시작된다. 도시의 삶이 성과를 위해 자신을 소모(Burn-out)하는 과정이었다면, 고향이라는 치유농업적 공간에서의 시간은 방전된 내면을 다시 채우는(Refill) 시간이다. 삭막한 빌딩 숲에서 숫자에 매몰되었던 영혼이 비로소 고향의 수평적인 지평선을 보며 숨을 고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고향을 방문하는 행위를 단순히 오래된 관습으로 치부하기보다, 일종의 ‘정신적 방역’이자 국가적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 중인 치유농업 서비스가 명절의 고향 방문 문화와 보다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그 사회적 가치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예를 들어, 고향 방문객들이 단순히 집에만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전문 치유농장을 방문해 명상을 하거나 동물과 교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명절 증후군을 예방하고 농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 고향의 빈집이나 유휴 농지를 전문적인 치유농업 공간으로 재조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는 고향을 지키는 노년층에게 ‘돌봄의 주체’라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여 자부심을 심어주고, 도시의 자녀 세대에게는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전용 휴식처’를 제공하는 상생의 모델이 될 것이다.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나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치유농업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 역시 인간이 인위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 안에서 본연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데 있다. 고향의 흙은 말이 없지만, 그곳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복잡한 세상의 계산기를 잠시 내려놓게 된다. 치유농업의 시각에서 본 고향은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지친 정신을 위해 설계된 거대한 ‘초록색 처방전’과 같다.
올해 설날, 고향의 찬 공기 속에 섞인 흙내음을 깊게 들이마셔 보자.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평범한 농촌 풍경이 사실은 나를 치유하기 위해 준비된 가장 고귀한 공간임을 기억하자. 고향이라는 치유의 공간에서 얻은 단단한 정서적 허기는 다시 도시의 일상을 살아낼 강력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나를 품어줄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한 위로를 받고 있다.
참고문헌
송미진. 2026. 치유농업과 사회학, 그리고 2026년 치유농업 융합행사.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6-2-8).
송미진. 2026. 치유 화훼장식과 팜파티, 농업의 새로운 감성 산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6-2-2).